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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커피를 진하게 마셔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 전 다녀간 아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서른이 넘은 커다란 사람이 ‘강연’을 앞두고 지나치게 애쓰던 모습, 마치고 나서 길게 엎드렸던 모습이 마음에 남아있었다. “평생 해야 할 일인데 매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돕느라 말했지만 앞에 서기 직전까지 고치고 반복하며 예민하던 분위기라니…. ‘인정받으려는 욕구, 좋은 피드백에 대한 욕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릴 적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제대로 해주지 못해 그렇다는 미안함이 연결되었다. 부모로서 부족했던 젊은 시절, 아이를 몰아가던 기억이 올라오며 부끄러운 마음에 그냥 지나갈 수 없겠다 여겨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배운 대로 해보자. 잘못한 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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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7.12.0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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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제일 큰일 날짜가 되자 내비게이션을 따라 주소지로 가족들이 속속 당도했다. 방이 많고 넓은 펜션에 가장 먼저 도착한 큰 언니와 막내는 여러 날 많은 사람이 지내야 하니 기본 음식이 있어야 한다며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속이 꽉 찬 이북식 만두를 이백 개나 빚어 늘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오빠네 냉동고에 채워 놓았다. “뭘 해주리?” “부대찌개, 갈비찜, 황태구이, 잡채~” 오빠는 그리던 메뉴를 줄줄이 대고 있었다.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시작해 낮 시간에 박물관을 가고, 둘레 길을 걸으며 근사한 외식을 해도 한 끼 식사는 반드시 밥을 해야 하는 한국 사람들. 여러 사람이 모이면 함께 하는 식사, 그게 제일 큰일이었다. 같은 편 되어주기 조카 결혼식으로 모여 큰 행사를 치르고 났기에 주빈인 작은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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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11.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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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딸 결혼식을 앞두고 오빠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지 푸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드라운 성품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기쁨을 주던 딸, 귀엽고 사랑스럽게 얘기하던 딸을 출가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을 옆에서 짐작해볼 뿐이었다. 결혼식을 앞둔 기간 동안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 하겠더라는 친구 모녀도 보았고, 일부러 인지 톡톡거리는 딸이 오히려 고맙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떠남’에 의미를 크게 두면 서운함이 솟구쳐 예식을 망칠까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다는 신부도 있었다. 결혼식 치르는 게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사위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게 딸에게 도움이 될지, 오빠는 곰곰이 생각하다 몇 자 적었다고 했다. 그리고 피로연에서 읽어 내려갔다. ‘사위에게’ 요즘 시간이 여유로워지며 우리 집 정원을 가꾸고 있다네. 그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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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10.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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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 씨는 오늘도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눈다. 마음을 같이해 아파하기도 하고 격려도 하며 기쁨에 동참하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면서. 그런데 이야기에 한참 빠져들다 보면 에너지가 떨어지는 때가 있고, 그런 날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남 얘기 너무 많이 듣다간 병난다. 잘 조절해야지.” 노년의 엄마가 준 교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러다 몸살 난 적이 있었기에 말이다. 이담에 카운슬러 해라 평양에서 숭의여학교 기숙사 생활을 한 엄마는 경화 씨가 자라는 중에 말씀하셨다. “넌 이담에 카운슬러를 해라. 학교 다닐 때 카운슬링 해주던 선생님이 얼마나 좋아보였던지 몰라. 집 떠나 객지서 애쓰던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던 카운슬러, 너도 그런 일 했으면 좋겠다.” 경화 씨가 중학생 때 들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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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8.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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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 씨는 그날 무슨 생각으로 그 옷을 집어 들었는지 모르겠다. 빈티지 거리가 문 닫는 시간이라 입어볼 수도 없었는데 꼭 사야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옆에 있던 아영 씨 언니가 “이걸 어디 갈 때 입으려고?” 라며 “생각해 봐. 입을 수 있을지” 말려도 “액자처럼 벽에 걸어놓기라도 하려고.” 건성 대답하며 계산대로 가고 있었다. 레이스에 프릴 장식이 있는 폭넓은 원피스. 잔잔한 꽃무늬와 퍼프소매가 다 좋았다. 입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옷을 사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인데 그냥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참 이상한 순간이었다. 여행가방 밑바닥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서도 꺼내지 못했다. 남편이 놀랄까봐. 다음 날 혼자 펼쳐보니 허리가 잘록하고 가슴이 깊게 파인 중세풍으로 사이즈가 작았다. ‘이건 어차피 벽에 걸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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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8.0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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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힘들고 슬픈 얘기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닌데 전쟁 비슷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산 사람과 그 가족들 얘기다. 80년대 초반에 젊은 군인으로 복무한 김 씨는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결혼을 했다. 무엇을 겪었는지 자신의 사연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 가운데 그의 아내는 서서히 술에 의존해가는 김 씨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되었다. 남편이 상이용사로 지정되어 받는 얼마의 보조금을 위안삼아 아내는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고 보듬었다. 그러나 김 씨는 점점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상태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알코올 중독~ 그 중독의 늪으로 빠져 들며 아내는 집 안팎의 일을 모두 감당하고 그 치다꺼리를 해내야 했다. 숨고 싶어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빠의 망가진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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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6.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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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씨는 왠지 울적한 마음에 책방에 들렀다가 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다. ‘완벽한 가족이라니,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일 거야.’ 하면서도 들고 나오는 마음은 아마도 확인하고 싶었음이리라. 딸의 마음을 알아주고 대화가 통하는 엄마로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딸이 자라오며 결핍됨이 있다면 결혼 전에 풀어주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데 얼마나 더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는 것일지. 그런 생각에 잠겨 가라앉은 날이었다. 여유롭게, 자유롭게(?) 정화 씨는 중년기에 삶을 내려놓는 자세를 익혀가며 그것이 좋아 ‘다 내려놓고 여유롭게,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딸의 반응이 “엄마도 그렇게 변한지 얼마 안 된다”는 거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엄마도 최고와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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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4.0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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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선 씨와 혜영 씨는 중년에 만나 몇 해된 친구 사이다. 어른이 되어 친구가 되는 일이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뭔가 특별히 끌려 가까워진 듯하다. 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재미있고 진지하게 빠져 들어가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주에 우리 네 자매와 엄마가 함께 몇 밤을 보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 중에 가장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누굴까 하며 엄마한테 물었지요. 그랬더니 엄마가 저를 지목하신 거예요.” 명선 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언니가 자기 아니냐며 서운해 하는 거예요. 사실 제 삶의 신조가 ‘겉과 속이 비슷하게 살아가자’여서 저는 엄마의 눈이 맞았다고 여기고 있었거든요.” “어머, 내 생활의 수칙도 ‘안팎이 같은 삶을 살자’는 건데 어떻게 저랑 같죠? 그런 점이 맞아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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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3.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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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FM라디오에서 마리오 란자의 “Drink, Drink”가 뿜어 나오자 영은 씨는 마시던 커피 잔을 식탁에 긁으며 “lovingly lovingly soon into mine”을 따라 불렀다. 이어 대학 축전 서곡 “Gaudeamus Igitur” 멋진 남성중창 화음이 나오자 전율이 느껴지며 중3 때 국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황태자의 첫 사랑’을 얘기하며 대학 생활을 꿈꾸게 한 선생님. 영은 씨는 그 영화를 보며 내용보다 노래에 빠져들었고 대학에 대한 환상을 마음대로 그리게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일탈을 미화해보면서. 현실, 땅을 밟는 것 대학 시험에 떨어진 2월, 발표보고 돌아오는 길 노오란 햇살 속 버스 안에서 나오던 트로트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이별은 너무 슬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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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2.0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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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새로운 세계(몸과 삶의 하나 됨)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한다. 보고 또 보아도 끌려 들어가는 로맨틱한 영화 장면을 결혼 생활로 꿈꾸면서 말이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장면 밑에는 훨씬 더 많은 실생활이 생략되어 있음도 알아야 한다. ‘사랑한다’는 몽롱함 속에 결혼해, 상대방에게 ‘멋있는’ 자세만 요구하다 서로 서늘해질 수 있고, 금방 ‘변했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기대하는 것들을 실제적으로 전환시켜가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순한 말로 표현하기 별 생각 없이 드라마를 많이 보는 사람은 거기서 말을 배운다. 자극적이고 튀는 표현에 감동받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한 표현을 간지럽다고 여기며 전달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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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1.0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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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인생은 하루 중 몇 시에 해당할까. 나는 지금 몇 시를 지나고 있는 건가. 백세 시대라는 말에 맞춰 계산하기 쉽게 96세를 자정으로 해보자. 그러면 하루 24시간을 대비해 1시간을 4년으로 하면 된다. 이제 자신의 나이를 4로 나누기만 하면 하루 중 몇 시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 36세는 오전 9시, 48세는 12시(정오), 60세는 15시(오후 3시), 72세는 18시(오후 6시)가 된다. 각 시간에 따른 나이의 의미는 자신이 붙일 수 있으나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 36세(오전 9시) 이제 막 에너지를 집중해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 48세(정오) 오전 일을 마쳤으니 식사도 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오후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에너지를 보충하며 일의 방향을 생각한다.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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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6.01.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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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올록볼록 에어 캡 봉투에 든 소포를 받아들었다. 크리스마스에 늦지 않으려고 일찍 서둘러 애쓰고 다녔을 아이들 모습이 떠올랐다. 마땅한 선물을 고르고 부치느라 쇼핑몰로, 우체국으로 왔다 갔다 했을 아이들. 말랑말랑한 포장을 열어보니 따스한 플란넬 잠옷과 눈 영양제가 들어있었다. 짙은 색 격자무늬의 잠옷은 아빠 것으로 보였고, 눈 영양제가 정은 씨 것으로 보였다. “카드는 어떻게 요런 걸 골랐을까?”하며 읽는데 잠옷을 입어보는 남편이 “어, 이상하다”하는 것이다. “팔 길이가 짧아~” 가까이 가서 단추 여밈을 보니 여성 옷이었다. 검정에 가까운 색깔이 누가 봐도 남자 것으로 보이는데…. 남편의 실망도 안됐지만 아이들이 알게 되면 어떨지 마음이 짠해왔다. 정은 씨는 얼른 분위기를 바꿔 “올 크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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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5.12.0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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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데이트 기간을 지내고 결혼 얘기가 오가기 시작하면, 대화 내용이 복잡해진다. 내가 그려온 스타일과 다른, 상대방 의견에 양보하기 어려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밥맛도 없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다혈질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 일은 결혼 후에 더 많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양가 부모들의 말씀이 직·간접적으로 전달되면서 ‘이건 이래야 한다는데’, ‘그건 그러는 거래’라는 말 속에서 서로 보이게, 보이지 않게 불편해질 수 있다. 이러한 때 출구를 찾기 위해 ‘안전한 테이블’이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안전한 테이블’은 꼭 말하고 싶고 상대방이 들어 주었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 때, 신청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신청한 사람의 말을 정한 시간(20분~30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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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5.09.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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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권태기가 왔나봐. 월요일에 출근하기가 무거워요.” 전화기 넘어 딸의 목소리다. 이어 평소 말이 없는 아들도 한 마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잘 안 맞아요. 파트너를 바꿔야 할지, 좀 두고 봐야 할지 모르겠네요.” “늘어진다. 날씨도, 몸도. 나이를 먹나 보네.” 퇴근하는 남편까지 이렇게 한 마디씩 하는 말을 듣고 나면 혜영 씨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떤 대답을 각자에게 적절하게 해야 할지,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다잡아줘야 할지.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식구마다 하는 소리에 엄마는 화음을 맞추느라 애쓴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딸이 “엄마는 화음을 넣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 집 소리굽쇠(tuning fork) 예요.”라고 받아주는 게 아닌가. “소리굽쇠? 그건 악기들이 소리를 맞추기 위해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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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5.09.0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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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하며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가족원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보살피려는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일도 고단할 텐데 일종의 완벽주의 성향으로 모두의 대장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아버지로서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모범적으로 보여 지기도 하지만, 날마다 성장하고 독립적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된 자녀들의 방학 스케줄을 함께 짜길 원하며 휴가도 아버지 시간에 맞춰 모두 다함께 가자고 했다. 어려서부터 그래왔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은 불편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여행할 때도 운전대는 아버지가 잡아야 하고, 갈 장소나 음식 메뉴를 결정하는 일과 옷차림까지 참견하는 아버지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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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5.07.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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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자 젊은 신영 아빠는 자원입대해 군인으로 나가며 부인과 어린 딸을 지리산 마을에 데려다 놓았다. 이북서 직장을 따라 남하한 신영이네가 대전에 자리 잡고 살림을 장만하기 시작할 무렵,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다시 집을 떠나게 된 것이다. “여기는 괜찮을 거야. 곧 돌아올게”라며 남편이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누군가가 낯선 신영 엄마를 군인 가족이라고 알려줬는지 인민군들이 총부리를 겨누며 신영 엄마를 마루로 내몰아 앉혔다. 일찍 저녁밥을 해서 인민군들에게 한 상 차려주고 난 동네 사람들이 둘씩 셋씩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피난 온 낯선 이가 어떻게 되나 보려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구경하듯 앉아 있었다. 밤새 이어진 공개 심문 아직 어둠이 채 깔리지 않은 여름 초저녁, 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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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혜
2015.06.0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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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도 변합니다. 더 진해지든지, 약해지든지. 특히 청춘의 감정인 사랑은 변화하며 익어가야 한다. 짜릿한 에로스의 사랑에 끌린 연애가 결혼으로 안정을 찾으려면 서로를 향한 배려와 봉사의 자세가 더해져야 한다. 이것은 나의 만족과 함께 상대방의 상태에도 늘 마음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결혼예비공부에서 이런 비유를 쓴다. 집에서 된장찌개에 식사를 잘하고 나서면 음식점에서 나는 냄새에 기웃거리지 않게 되지만, 배가 고픈 사람은 길거리 음식 냄새를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다는 얘기다. 이것은 집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사랑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것이, 다른 데로 마음을 향하게 하지 않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임을 말한다. 사랑에 주리지 않도록 보살피고 안아주어야 한다. 늘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지난호에서도 말했듯이
작은 천국 패밀리
전영혜
2015.06.0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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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들의 ‘결혼 사보타지(?)’가 여기저기서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적령기를 넘긴 남자도 많고 여자는 더 많아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가정마다 고민이다. 사회적, 국가적 뒷받침은 큰 틀에서 차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리라 믿어도 현 시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가 우리의 과제다. 최근 한 아버지가 보내온 메일에 답하며 한동안 살아온 우리의 마음자세를 돌아보게 되었다. “딸, 아들을 둔 60대 아버지입니다. 신앙의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열심히 두 아이를 키워 왔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30대 중반이 된 딸아이가 결혼에 대한 진지함이 없어 보입니다. 남성을 소개받는 일에 별 성의 없는 모습이 결혼에 대한 성숙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들 역시 외국서 대학
작은 천국 패밀리
전영혜
2015.04.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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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기를 지내며 결혼이 현실로 와 닿은 여성은 바로 ‘엄마가 될 준비’에 들어간다. 누군가 ‘지혜는 변하는 공간에 잘 적응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듯이 말이다. 은성 씨는 편안하고 믿음직한 남자, 신앙의 가정에서 자신을 좋아해 주는 분위기에 휩싸여 쉽게 결혼을 결정했다. 예쁘다며 모두들 반겨주니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일찍 자리 잡는다는 생각으로 결혼 생활의 문을 열었다. 아이 낳아 기르고 또 아이 낳아 두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사랑하는 법도 배우고 보람도 가득하지만 ‘푸른 시절이 이렇게 다 가는가’ 문득문득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기에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아나운서가 될 줄 알았는데 작은 애를 데리고 모처럼 서울 시내 나들이를 나
작은 천국 패밀리
전영혜
2015.03.08 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