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 씨와 혜영 씨는 중년에 만나 몇 해된 친구 사이다. 어른이 되어 친구가 되는 일이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뭔가 특별히 끌려 가까워진 듯하다. 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재미있고 진지하게 빠져 들어가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주에 우리 네 자매와 엄마가 함께 몇 밤을 보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 중에 가장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누굴까 하며 엄마한테 물었지요. 그랬더니 엄마가 저를 지목하신 거예요.”
명선 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언니가 자기 아니냐며 서운해 하는 거예요. 사실 제 삶의 신조가 ‘겉과 속이 비슷하게 살아가자’여서 저는 엄마의 눈이 맞았다고 여기고 있었거든요.”
“어머, 내 생활의 수칙도 ‘안팎이 같은 삶을 살자’는 건데 어떻게 저랑 같죠? 그런 점이 맞아서 이렇게 만나나 봐요.”
혜영 씨가 응수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생활신조를 갖게 됐어요?”
“엄마 때문이에요.”

집에서 너무나 다른 엄마
“우리 엄마는 학자의 아내로 살면서 남들에게 이해심 넓고 잘 받아주는 ‘어진 여인’으로 입에 오르는 분이에요. 남들에게 그렇게 했으니까요. 그런데 집에서의 엄마는 억척스럽고 세고 푸근하지도 않은 사람이거든요.”
“와, 우리 엄마랑 비슷하네요.”
명선 씨의 말은 이어졌다.
“거기다 본인이 살던 방식이 아닌 것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어떤 거죠?”
“‘와이셔츠는 다림질하지 마라. 요샌 옷감이 좋아서 다릴 필요가 없다.’ 살림을 모르던 저는 그 말대로 주장하다 남편이랑 싸우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대부분 다림질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속옷까지 다린다는 걸 알게 됐지요.”
“바쁘게 사는 딸 일손을 덜어주려고 한 말 일 텐데 도움이 안 됐네요.”
“게다가 엄마는 아버지 셔츠를 계속 정갈하게 다림질을 하며 살더라고요. 내게 한 말은 잊은 듯 해 보였어요.”
혜영 씨도 얘기했다.

내재된 욕심쟁이 엄마
“우리 엄마는 일본 여자 같은 이미지라고 듣고 살았어요. 조용하고 순종적으로 보이며 단아한 얼굴로 잘 웃고. 그런데 집에서는 욕도 잘하고 욕심이 많아서 누구 만나고 들어오면 ‘그 집 애들은~’ 하면서 우릴 막 혼냈어요. 그러다 손님 오시면 다시 예의 있게 대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리들’이 엄마들한테 꽤 있음을 두 사람은 씁쓸한 얼굴로 얘기하며 공감하고 있었다.
‘집사, 권사’의 이름으로 살면서 가족이기주의의 모습을 죄책감 없이 보여 온 엄마들. ‘그때 아이들은 어려서 모를 거야’ 믿고 싶겠지만, 이렇게 장성한 자녀들이 그 엄마를 반면교사 삼아 ‘안팎이 비슷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작심을 한 것을 알면 정말 놀랄 것이다.

우리가 ‘좀 나은 세대’라는 희망적 대화로 이어가다 문득 “우리 애들도 우리의 어떤 면을 닮지 않으려 애쓰고 있을까”라고 말했다.
“우리 애들은 인종 차별.”
“우리는 내 뜻대로 하는 엄마라는 느낌.”
“잘난 척 안하기.”
“머리만큼 몸도 가꾸자.”

객원기자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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