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자 젊은 신영 아빠는 자원입대해 군인으로 나가며 부인과 어린 딸을 지리산 마을에 데려다 놓았다. 이북서 직장을 따라 남하한 신영이네가 대전에 자리 잡고 살림을 장만하기 시작할 무렵,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다시 집을 떠나게 된 것이다.
“여기는 괜찮을 거야. 곧 돌아올게”라며 남편이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누군가가 낯선 신영 엄마를 군인 가족이라고 알려줬는지 인민군들이 총부리를 겨누며 신영 엄마를 마루로 내몰아 앉혔다. 일찍 저녁밥을 해서 인민군들에게 한 상 차려주고 난 동네 사람들이 둘씩 셋씩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피난 온 낯선 이가 어떻게 되나 보려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구경하듯 앉아 있었다.

밤새 이어진 공개 심문
아직 어둠이 채 깔리지 않은 여름 초저녁, 신영 엄마와 아이는 어리둥절 마루에 앉아 마구잡이 공개 심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디 있나.”
“우릴 두고 떠난 뒤 어떻게 됐는지 모릅니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던데 어디서 왔나.”
“대전에서 남편 직장 곁에 집 얻어 살다 피난 왔수다.”
“남편이 직업 군인 아닌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외다.”
“그럼 이 산동네엔 어떻게 왔나.”
“트럭 뒷켠을 얻어 타고 오다 내려준 곳이오.”
“남편한테는 연락 없나.”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그걸 누가 알갔시오.”
밤새 비슷한 질문이 계속되며 기운 없는 대답이 이어지자 호기심에 바싹 다가앉았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인민군도 피곤한지 총을 내려놓았다.
“아즈마이, 그러니까 그 이전에 살던 동네는 어디라 했수까.”
“황해도 수안이외다. 곡산이라 부르는 동네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요.”
“모릅네다. 전쟁이 수그러들면 살던 데로 가야지요.”
지루한 심문 속에 짧고도 긴 여름밤이 지나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이젠 구경하던 사람들도 지쳐 일어나 돌아가고 인민군과 신영 엄마만 남았다.
“아즈마이, 이제 됐시오. 이 동네를 떠나 살던 데로 가시라요. 나, 아즈마이 고향 사람이외다.”
현장에서 총살당할 거라며 수근 대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는데 아무 일없이 “아즈마이, 이제 됐다”는 소리를 들으니 꿈꾸는 것 같았다.
밤새 보채지 않고 엄마 곁을 지킨 신영이가 곯아 떨어져 자고 있었다.

천국 본향을 향하는 길목에
이제 90세가 된 신영 어머니는 날마다 천국을 사모하며 찬송을 불렀다. 평생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온 권사님답게 ‘돌아갈 내 본향 하늘나라’ 라고 소망의 찬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몸이 쇠약해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이북의 어린 시절 고향 얘기를 그림을 떠올리듯 묘사하기 시작했다.
“주일 아침 예비 종을 치면 다들 교회 가느라고 바쁘게들 돌아갔지. 하얀 무명옷을 지어 입고 서로 얘기들 하며 교회에 갈 때는 온 마을이 천국 같았어. 복음이 일찍 전해진 두메산골 마을 사람들은 주일을 기다리며 사는 것 같았다.”
“평양 신학교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러 전도사들이 오면 우린 일주일 동안 꼬박 그분들만 따라 다녔어.”
이렇게 꿈꾸듯 계속 고향 이야기를 하신 것이 신영 어머니의 마지막이었다. 고향을 떠난 지 70년. 나그네 생활이 고향 이야기와 함께 마쳐진 것이다.
어린 시절 충분히 담아놓은 행복한 기억으로 어른으로서의 길고 힘든 시간을 잘 지내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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