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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땅 사이에
[195호] 2016년 02월 07일 (일) 전영혜 @
아침부터 FM라디오에서 마리오 란자의 “Drink, Drink”가 뿜어 나오자 영은 씨는 마시던 커피 잔을 식탁에 긁으며 “lovingly lovingly soon into mine”을 따라 불렀다. 이어 대학 축전 서곡 “Gaudeamus Igitur” 멋진 남성중창 화음이 나오자 전율이 느껴지며 중3 때 국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황태자의 첫 사랑’을 얘기하며 대학 생활을 꿈꾸게 한 선생님. 영은 씨는 그 영화를 보며 내용보다 노래에 빠져들었고 대학에 대한 환상을 마음대로 그리게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일탈을 미화해보면서.

현실, 땅을 밟는 것
대학 시험에 떨어진 2월, 발표보고 돌아오는 길 노오란 햇살 속 버스 안에서 나오던 트로트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이별은 너무 슬퍼.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영은 씨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거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대학 생활에 겉멋이 들어 있었을 뿐 준비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은 거다. 아니, 미리 대학생처럼 멋 부리고 다니다 3학년 때 급하게 공부하려니 구멍 난 시간을 메울 길이 없었다. 이것은 영은 씨 자신만 아는 속사정이었기에 ‘시험은 속일 수 없구나’하며 헛헛해 할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렇게까지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엄마는 앓아누웠고, 오빠들은 창피하다고 야단이었다. 죄인~ 이래저래 영은 씨는 죄인이었다. 나중에 들어간 대학은 원하던 데가 아니라 정붙이지 못했고, 가족 앞에도 늘 주눅 든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황태자의 첫사랑, 하이델베르크
그로부터 20년 후(그래도 인생은 주님 품 안에서 잘 이어져) 두 아이들과 함께 독일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하이델베르크에 꼭 가야 해.”
영은 씨는 ‘Drink, Drink’를 부르던 황태자와 친구들이 아직도 있을 것만 같은 학생 감옥, 그 배경이 되던 하이델베르크 성을 보고 싶었다. 그 때는 그 영화가 한국의 대학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리 가슴이 뛰었던가.
“엄마는 어릴 때 이런 멋진 대학생활을 꿈꾸었는데, 해야 할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학교를 떨어졌단다.”
“학교 떨어지는 게 뭐야?”
“으음, 시험 점수가 안 좋아서 그 학교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는 거야.”
“아, 우리 엄마 학교 떨어졌구나.”
아이가 재미있어했다.
슬프고도 아련한 옛 감정들이 올라오는 걸 느끼는데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거”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2월, 졸업식을 가기도 멋쩍었던 때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나니 여고졸업식에 가는 것이 부담되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등학교 졸업식을 안 갈 수도 없고.
엄마가 몸을 추스르고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나섰다.
‘아, 이렇게 어색한 때도 그냥 지나가는구나.’
사진도 찍고 꽃도 있는데 친구들과는 지나가는 인사만 하고 선생님 눈길은 좀 피해가면서 얼른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초라한 날이었다.
고등학교 때 미리 맛본 대학생 같은 일탈들이 영은 씨에겐 평생 반성할 일로 남아있다. 성실하게 공부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그 낙방이 지금까지 삶에 교훈이 되기도 해 열심히 살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할 수 있다. 입시에 실패해도, 공부를 그리 잘하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객원기자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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