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씨는 왠지 울적한 마음에 책방에 들렀다가 <완벽한 가족>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다. ‘완벽한 가족이라니,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일 거야.’ 하면서도 들고 나오는 마음은 아마도 확인하고 싶었음이리라.
딸의 마음을 알아주고 대화가 통하는 엄마로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딸이 자라오며 결핍됨이 있다면 결혼 전에 풀어주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데 얼마나 더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는 것일지. 그런 생각에 잠겨 가라앉은 날이었다.

여유롭게, 자유롭게(?)
정화 씨는 중년기에 삶을 내려놓는 자세를 익혀가며 그것이 좋아 ‘다 내려놓고 여유롭게,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딸의 반응이 “엄마도 그렇게 변한지 얼마 안 된다”는 거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엄마도 최고와 최선을 좋아했어요. 잘했을 때 좋아하는 그 표정~”
“그래? 그래, 엄마가 앞서서 열심히 살도록 부추겼지. 그런데 이제는 일도 중요하지만 봉사도 하고 옆도 바라보며 게으름도 피워보라는 거야.”
정화 씨 스스로 이 말소리가 공허하게 돌아오는 걸 느꼈다.
‘이게 맞는 건가. 진심인가.’

완벽한 비밀 가족
책 속의 가족은 교수 아빠, 디자이너 엄마, 우등생 누나들을 관찰하는 막내 제제의 눈으로 비쳐진다. 인테리어 디자인 전문가 엄마 덕분에 집안은 늘 세련되고 단출하게 꾸며져 있는 제제네 거실. 과학자 아버지는 꽤 이름 있는 교수로 성실한 분이시다. 두 누나는 칭찬 받는 우등생이며 미인인데 비해, 막내 제제는 보통 수준의 아이로 특별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가족을 가까이서 보는 옆집 친구가 “너희 가족이라고 허점이 없을 리가 없어”라며 숨어서 가족들의 생활을 엿보자고 한다. 스파이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큰 소파 뒤에 숨어 말소리와 행동을 지켜보기를 몇 시간 씩, 몇 날을 그러다 지루해질 때 쯤 제제는 아빠의 출근길을 뒤따라간다. 그런데 아빠가 학교가 아닌 곳에 내리더니 온종일 지내다 오는 것이 아닌가. 아빠는 얼마 전 퇴직을 한 상태였다.
또 밤에 마당을 내다보다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게 된다. 늘 건강을 최고로 말하는 엄마의 비밀이었던 것이다. 누나들의 방에 갑자기 들어간 날엔 누나 둘이서 시험 커닝 페이퍼를 완벽히 만들다 서로 놀라게 된다.
완벽한 가족은 포장된 것일 뿐 실제일 수 없다는 얘기가 주제처럼 계속 흐르고 있었다.

퍼즐 맞추기, 게임
정화 씨도 이즈음에서 자신이 가족들 앞에 ‘온전한 훈육자’로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이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웠는지 생각해 보았다. 엄마의 실패를 겪지 말라고, 엄마가 잘하는 것은 너희도 잘해야 한다고.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이면은 누구보다 자신이 알고 있음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휴식의 이름으로 혼자만의 게으름과 지나친 몰입을 갖는 것~ 퍼즐 맞추는 모습이 떠올랐다. 퍼즐을 맞추다 몸살이 나기도 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시간을 단축시키느라 팔이 떨리도록 반복하는 모습들.
모를 거 같지만 제제처럼 애들도 다 아는 모양이다. 단지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제제처럼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완벽한 엄마는 없다. 완벽한 비밀도 없다.

객원기자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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