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 씨는 오늘도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눈다. 마음을 같이해 아파하기도 하고 격려도 하며 기쁨에 동참하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면서.
그런데 이야기에 한참 빠져들다 보면 에너지가 떨어지는 때가 있고, 그런 날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남 얘기 너무 많이 듣다간 병난다. 잘 조절해야지.”
노년의 엄마가 준 교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러다 몸살 난 적이 있었기에 말이다.

이담에 카운슬러 해라
평양에서 숭의여학교 기숙사 생활을 한 엄마는 경화 씨가 자라는 중에 말씀하셨다.
“넌 이담에 카운슬러를 해라. 학교 다닐 때 카운슬링 해주던 선생님이 얼마나 좋아보였던지 몰라. 집 떠나 객지서 애쓰던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던 카운슬러, 너도 그런 일 했으면 좋겠다.”
경화 씨가 중학생 때 들은 말이었다. 그때 그런 직업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화 씨도 막연히 듣고 잊은 듯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 다니다 다른 직업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년에 접어들며 우연히 카운슬링 공부를 하게 되자 엄마 말이 생각났다.
‘엄마가 선견지명이 있었나.’
돈은 받지 마라
그 후 카운슬링 일을 시작하는데 엄마는 다시 이런 말을 했다.
“너 카운슬링으로는 돈 받지 마라. 그건 마음을 살펴주는 귀한 일이잖니?”
경화 씨는 이 말이 참 역하게 들렸다.
‘엄만 뭘 모르는 거야. 다들 대가를 받고 하는데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대답하기 싫어 알았다고만 했다.
경화 씨가 사람들을 만나 어려운 삶의 이야기들을 듣기 시작하자 이 일은 ‘값’으로 매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같이 하고 시간과 에너지, 날마다 기도해주는 이 모두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겠나 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많아 자신의 경우는 안 받는 것이 옳다고 동의하게 되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그럴 수 있는 넉넉한 생활로 이끄시는 주님, 남편의 울타리를 느끼면서 사는 것이었다.

얼굴 새까맣게 된다
또한 경화 씨는 카운슬링을 하다 보니 자신에게 행복 에너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나눠줄 힘이 바닥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내담자를 만나는 일 못지않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여길 때 즈음, 엄마는 앞서 말한 걱정을 내놓으신 거였다.
“남 얘기 너무 많이 들으면 안 된다. 잘 조절하며 들어야지. 사람들 복잡한 얘기에 빠지면 얼굴 새까맣게 된다.”
이제 더 약해진 노년의 엄마는 딸을 염려하고 있었던 거였다.
유명한 저술가 필립 얀시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빈민가에서 사회 복지를 위해 일하는 아내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쉬는 날마다 좋은 식사 자리를 마련해 격려한다는 것이다. 그래, 경화 씨는 남편에게 그 글을 보여주며 말했다. “내 보상도 이거면 돼.”
그리고 카운슬러의 카운슬러가 되는 친구들과 만나 서로의 얘기들을 나누기로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을까.
노년까지 경험한 많은 것들, 그것을 지혜롭게 소화해 나오는 말들이었다. 바로 통합이다.
가을, 이번엔 ‘중년기의 자화상’을 주제로 집단 상담을 해야겠다.

객원기자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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