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 씨는 그날 무슨 생각으로 그 옷을 집어 들었는지 모르겠다. 빈티지 거리가 문 닫는 시간이라 입어볼 수도 없었는데 꼭 사야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옆에 있던 아영 씨 언니가 “이걸 어디 갈 때 입으려고?” 라며 “생각해 봐. 입을 수 있을지” 말려도 “액자처럼 벽에 걸어놓기라도 하려고.” 건성 대답하며 계산대로 가고 있었다.
레이스에 프릴 장식이 있는 폭넓은 원피스. 잔잔한 꽃무늬와 퍼프소매가 다 좋았다.
입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옷을 사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인데 그냥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참 이상한 순간이었다. 여행가방 밑바닥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서도 꺼내지 못했다. 남편이 놀랄까봐.
다음 날 혼자 펼쳐보니 허리가 잘록하고 가슴이 깊게 파인 중세풍으로 사이즈가 작았다.
‘이건 어차피 벽에 걸어놓고 보려 했는데 뭐.’ ‘음, 음 딸이 여름방학에 오면 입혀봐야겠다.’

딸 구슬려 그 옷을 입히며
“혜인아, 엄마가 지난 여행에서 빈티지 가게에 들렀다가 원피스를 하나 사왔어. 비비안 리가 입었던 스타일이야.”
“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그 사람 옷을?”
“그런 종류지.”
“그런 건 경매하는데. 엄청 비싼 거 아니야?”
“한 번 입어볼래?”
아영 씨는 딸이 입다가 더워서 짜증낼까 슬슬 에어컨으로 다가가 스위치를 누르고 있었다.
“어떤가 보자. 한 번 입어보기만 해”
복잡한 원피스를 아영 씨는 수수께끼 풀 듯 들추며 딸의 허리에 넣어 당겼다.
‘아, 딸에게도 허리가 이리 낄 줄이야.’ 웃음이 나오려 하지만 꾹 참았다. 안 입는다고 하면 안 되니까.
조이는 끈을 다 풀고 다시 끌어 올리며 “파티 옷이 이런 거구나.” 설명하는 아영 씨의 모습은 영락없는 영화 속 흑인 메이드였다.
그 때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보며 딸이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거울 좀 봐.”
거울 속 얼굴은 무더운 날씨에 눈 화장이 번져 부엉이처럼 되어 있었다. 그제야 둘은 웃음이 터져 웃기 시작하다가 눈물까지 흘리며 뒹굴게 되었다.
“엄마 파란 눈물 나온다.”
“너는 검정 눈물이야.”
아이라인이 흘러 엉망이었다.
다시 원피스 허리끈을 뒤에서 조이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장면과 똑같다며 둘은 웃고 또 웃었다.

노년의 엄마의 한 말씀
얼마 뒤 아영 씨의 엄마가 물으셨다.
“너 그때 산 원피스 입어봤니?”
“네, 혜인이 입혀봤는데, 입혀 보다가 웃음이 터져서~ 말할 수도 없이 웃었어. 안 입어보겠다고 할까봐 달래서 입히는데 땀범벅이 되고 얼마나 웃었던지 화장이 다 지워졌어.”
“너 벌써 그 옷값 다했구나. 그렇게 재미있는 웃음은 정말 귀한 거란다. 그것도 딸이랑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거다.”
90세 엄마의 시선은 우리와 달랐다.
그러고 나서 아영 씨는 자신이 그 옷에 왜 그렇게 끌렸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영 씨가 30대에 가난한 유학생활을 하며 원피스를 한 번도 사거나 입어보지 못했던 거였다. 벽에 걸어놓고 보기라도 하고 싶던 마음, 그 마음을 스스로 받아주기로 했다.

객원기자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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