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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대로 하기 ‘새로운 용기’
[216호] 2017년 12월 01일 (금) 전영혜 @

그 밤, 커피를 진하게 마셔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 전 다녀간 아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서른이 넘은 커다란 사람이 ‘강연’을 앞두고 지나치게 애쓰던 모습, 마치고 나서 길게 엎드렸던 모습이 마음에 남아있었다.
“평생 해야 할 일인데 매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돕느라 말했지만 앞에 서기 직전까지 고치고 반복하며 예민하던 분위기라니….
‘인정받으려는 욕구, 좋은 피드백에 대한 욕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릴 적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제대로 해주지 못해 그렇다는 미안함이 연결되었다. 부모로서 부족했던 젊은 시절, 아이를 몰아가던 기억이 올라오며 부끄러운 마음에 그냥 지나갈 수 없겠다 여겨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배운 대로 해보자. 잘못한 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거야. 아이건 자식이건. 이제 날아야 하는 사람이 어미로 인해 묶인 게 있다면 풀어줘야 하는 게 맞다. 아들이 더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라면….
스마트 폰에 문자를 남기면 즉각적으로 가는 거니 미리 몇 문장 적어봐야 했다.

아들아, 초등학교 때 엄마가 잘못한 일들이 생각나서 사과하고 싶다.
기대를 많이 하면서 혼내고, 수학 더 잘하라고 계속 문제 내주며 몰아댔지. 또 남이랑 비교하는 말도 많이 했고. 어디 가면 가만히 있으라고 눈치도 많이 준 거 미안하다.
커가면서도 엄마가 늘 뭔가 가르쳐주려 설명하고 확인한 걸 넌 무시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어. 그것도 엄마 잘못이야. 네가 얼마나 컸는지 모르고 그전같이 대한 거니까. 용서해줘. 네 습관이 잘못 들까봐 혼낸 일들이 꽤 있었는데 넌 아마 내용은 기억 못하고 나쁜 분위기만 기억할거야. 잘 모를 어두운 얘기들을 말해주면 같이 맞춰 풀어보자. 엄마가 더 늙기 전에.

두 칸에 나눠 읽기 좋게 문자를 찍었다. 새벽 1시. 처음 해보는 묵직한 사과로 온몸이 서늘하게 느껴져 왔다.
‘거긴 아침 아홉시니까 아들이 일 시작하며 문자를 보면 좋을 거야.’
약간 초조한 가운데 한 시간쯤 지나 스마트 폰에 답이 왔다.

엄마, 먼저 다가와서 사과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렇게 메시지 보내줘서 고마워요.
가족은 너무 가까운 사이라 힘든 일도 있지만 좋은 시간이 많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의 이런 모습 너무 멋지네요. Thank you for your honesty. I forgive you. ^^


어떻게 이렇게 사과를 받아들이는 멋진 문장을 썼을까.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의 많은 실수를 이렇게 단번에 털어낼 수는 없는 일이어서 다시 덧붙였다.

아들아, 잘 받아줘서 고맙다. 하나님이 아들을 잘 키워주셨네. 그래도 꼭 따지고 싶은 게 있으면 얘기해라. 간혹 잘못된 기억도 있으니 정정도 하게. 아픈 기억은 더 깊이 사과해야겠지. 엄마가 늘 기대를 너무 앞서 높이 가지고 있던 게 문제였어.

며칠 후 한 소설가가 비슷한 얘길 쓴 걸 보았다. 아이가 겨우 걸음마를 하던 때 신발을 안 신고 나가겠다고 해서 을러대며 울음을 터뜨리게 했던 일, 좀 더 컸을 때 짝이 안 맞는 신을 신고 나가겠다고 해서 그러면 남들이 바보라며 웃을 거라고 말했던 일을 기억하며 어쩌면 아이의 엄마들은 제멋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말도 있었다. 사과는 요청이 없어도 미리 미리 충분히 하는 게 좋다고.
살아가며 좋은 글을 읽고 또 읽었더니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나를 돌아보는 일에 시간을 들이며 나쁜 습관 고쳐가느라 애쓰는 길목, 잘못한 걸 스스로 말할 용기가 생겼나보다. 배운 대로 해보니 삶이 조금 더 투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올해의 마무리는 이런 자세로 해야겠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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