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이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하며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가족원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보살피려는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일도 고단할 텐데 일종의 완벽주의 성향으로 모두의 대장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아버지로서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모범적으로 보여 지기도 하지만, 날마다 성장하고 독립적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된 자녀들의 방학 스케줄을 함께 짜길 원하며 휴가도 아버지 시간에 맞춰 모두 다함께 가자고 했다. 어려서부터 그래왔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은 불편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여행할 때도 운전대는 아버지가 잡아야 하고, 갈 장소나 음식 메뉴를 결정하는 일과 옷차림까지 참견하는 아버지가 부담스럽게 여겨지던 때였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
그런 명이 아버지가 매우 피곤한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깜빡 졸음운전으로 공공기물 파손 등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들이 속속 밀려 왔다. 한동안 운전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이리저리 할 일이 밀어닥치니 정신적 충격은 말할 것도 없고 나날이 예민해져가고 있었다. 본인 몸도 여기저기 결려 물리 치료실을 다녀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가족에게 걱정을 끼친다는 생각, 또한 본인이 가족들에게 해야 하는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어려움이 되고 있었다. 똑바로 정신 차리고 살면 이런 어려움은 오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 낙심은 바닥을 치게 했다.
가족들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교통사고에 대한 응당한 과징금과 보험료 인상을 감안해야 하고, 시간이 지나야 운전면허가 살아나므로 너무 조바심이나 안타까움 내지 말고 기다리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명 사고가 나지 않은 게 무엇보다도 감사하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명이 아버지는 일하지 못하는 기간을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쉬고 또 쉬었다.

내적 맹세를 하게 된 이유
무엇일까. 명이 아버지가 이토록 ‘일하는 사람’, ‘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아이덴티티. 그러지 않을 때 오는 심리적 압박감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교회에서 상담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 한 가지를 짚게 됐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자신의 에너지를 넘치게 요구하고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해 고단한 삶을 살게 하는 거 같다”고.
이번 사고를 처리하느라 당장은 복잡하지만, ‘좀 다르게 살아볼 기회’로 여기고 넓게 주변을 돌아보면 어떻겠느냐고도 했다. 그런 생각이 왜 들지 않을까.
괜찮다고, 사고도 날 수 있는 거라고, 이만한 게 다행이라고 말해줘도 말이다.
상담사와 얘기를 더 나누다보니 명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아 어려서부터 경제적, 정신적으로 내내 궁핍했던 가운데, ‘내적 맹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결혼해서 자연스럽게 이뤄가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 역할이 명이 아버지에게는 삶의 목표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며 모든 필요를 채워주는 아버지~ 그것이 명이 아버지의 소원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을 한동안 할 수 없다고 여기니 낙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상담사는 한 걸음 나아가 넓은 시야의 삶을 바라보라고 제시해 주었다.
“어릴 적 내적 맹세로 여기까지 잘 살아 오셨어요. 이제는 거기서 좀 자유로워지세요. 아이들도 많이 자랐고 관심을 넓힐 때가 되신 거 같아요. 야베스의 기도처럼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역대상 4:10)가 지금 꼭 맞는 기도가 될 거예요.”

전영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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