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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 마리를 먹어도 취향이 참 달라요. 남편은 부드러운 살이 많은 다리를, 딸은 퍽퍽한 가슴살을 좋아하고, 저는 살보다 뼈가 많은 부분을 좋아해요. 또 전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냥 발라주는 게 재밌는데, 남편은 먹기 복잡한 건 질색하고요. 후배에게 밥 사준다고 뭐 먹고 싶은지 물었더니, “혹시 그건 그날의 저에게 물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네요.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먹고 싶은 게 다를 수 있지요. 사랑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주고 싶을 때 주는 게 아니라, 그가 원하는 걸 그가 필요할 때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상대가 그만큼 다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가 먹고 싶은 게 칼국수인지 스파게티인지, 지금 배가 고픈지 좀 더 있다 먹고 싶은지 알 수
칼럼
이종혜
2020.12.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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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 하며 컴퓨터가 일하기 힘들다고 소리를 내네요. 보이지 않는 곳에 용량을 차지하는 뭔가 있는 모양이에요. 불필요한 파일도 지우고, 묵직한 프로그램도 필요치 않아 삭제했더니 소리도 작업도 한결 편안해졌네요. 화면엔 나타나지 않아도 어디선가 계속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게 있을 때가 있어요. 그걸 지우고 나면 마치 무거운 옷을 벗은 것처럼 가벼워져요. 가끔 그렇게 점검하고 정리해줘야 일을 빠르게 할 수 있지요. 하는 일도 많지 않은데 무척 피곤한 날이 있어요. 일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 소모시키는 생각과 염려 때문이지요. 마치 컴퓨터가 전원에 연결되는 순간부터 프로그램이 돌아가듯, 눈을 뜨면 쉬지 않고 생각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있어요. 기계처럼 찾아 버튼 하나로 지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쉽지
칼럼
이종혜
2020.11.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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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일입니다. 장애인 사역을 하시는 회장님께서 “어머니라 부르는 어려운 어른을 위해 노래해주면 어떻겠노?”하고 물어오셨습니다. 그 어머님은 시골 단칸방에 살고 계셨습니다. 샷시 문을 여니 좁다란 마루가 조금은 숨을 쉬게 해 주는 집이었습니다. 인사를 건네는데, 어머님은 “아야! 아야!” 하시며 찡그린 인상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맞아주셨습니다. 어머니는 15년 전에 끓는 물을 실수로 쏟게 되어 목 아래부터 발등까지 전신화상을 입으셨는데, 그 후로 밤낮없이 살갗이 당겨지는 통증을 달고 사십니다. 어머니는 시집 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남편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화상을 입은 후 남편이 집에 들어오질 않더니 급기야 사라졌습니다. 떠난 것입니다. 통증이 몰려오고 외로움과
칼럼
박보영
2020.10.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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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리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휴대폰의 알람을 끄고, 오늘의 날씨, 뉴스와 일정을 체크해요.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숙제를 하기 위해 하루를 시작하듯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고, 어떤 날엔 이 많은 일을 언제 하나 싶다가도 이내 다 마치고 나면 숙제를 잘해낸 성취감도 들고, 한편 이렇게 하루가 또 갔구나 싶기도 해요.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곳에 잠시 머물렀어요. 보이진 않아도 모르는 새 세상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살다 전화도 문자도 안 되고 뉴스도 못 보고, 사회 관계망에도 접속할 수 없는 곳에 있으니 고요함이 다가오네요. 보이는 건 다양한 녹색의 나무들이고 들리는 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하지만 나름 분주한 소리들뿐이네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 명함 위에 새겨
칼럼
이종혜
2020.10.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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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참아주고 있다는 거고, 무슨 대단한 이벤트나 요란한 몸짓이 없더라도 그걸 사랑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하셨으니까요. 화나게 하고 무례히 하는 누군가를 참아주었다면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겠지요. 예수님이 내게 맡기며 부탁하신 사람들이 있어요. 사랑하기가 쉽게는 안 되는 이들도 그 가운데는 있기 마련이지요. 아침을 시작하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해요. 그 중에 꼭 한 번은 머무는 곳이 있어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주님, 오늘 제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그렇게 오늘의 힘과 지혜와 은혜를 구하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할 힘과 마음이 내겐 없기 때문이지요. 주님을 생각해야 참을 수
칼럼
이종혜
2020.09.0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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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과제와 문제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침마다 무엇을 입을까, 끼니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익숙한 일상도 생각해 보면 매일 주어지는 과제기도 하지요. 삶의 문제란 공부하고 준비한 시험 문제와는 또 달라 늘 당황스럽고, 답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서로 다른 문제를 안고 모였어요. 가난함과 목마름, 불안과 슬픔을 나누는데 삶의 문제가 어찌나 다양한지 아무 문제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신기한 건, 그 모든 문제에 ‘예수’라는 같은 답을 적었는데, 각자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수학문제집을 풀었다고 가져왔는데, 채점을 하려고 보니 1번 문제부터 ‘답 없음’이라고 적었더군요. 자기가 푼 답이 그 안에 없다는 거였어요. 주관식도
칼럼
이종혜
2020.07.0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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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차를 타고 나갔어요. 한 동안 시간이 멈춘 듯 했는데, 계절이 변하고 있었네요. 산은 푸르름 가득하고 꽃밭은 물감을 뿌린 듯 크고 작은 원색의 동그라미들이 가득했어요. 녹색이란 이름 하나론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초록들이 마음을 편하고 싱그럽게 하네요. 딸의 어릴 적 사진을 찾다 앨범 앞에서 한 동안을 머물렀어요. 태어난 날, 처음 뒤집던 날, 걷는 모습, 교복 입은 모습, 대학 졸업하던 날, 그리고 최근 모습까지 그 날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감사했어요. 자녀를 주셔서, 아이가 걸어서, 합격해서, 원하는 걸 주셔서 감사했지요. 하지만 사진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도 많아요. 오히려 가슴 철렁하고 아픈 이야기들이 기억 속에선 사진보다 더 선명한 것도 같아요. 아이가 밤새 울어 같이 밤을 새다시피 한 날,
칼럼
이종혜
2020.06.0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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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천상의 물감일까 싶은 수만 가지 초록빛이 우리 산야에 물들었다. 그 아름다움은 본향의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땅은 초록일 때, 하늘은 파랑일 때, 자연은 가장 평화로운 것 같다. 푸르름 사이에 ‘우분투!’ 우리가 살아간다. 유례없는 전쟁을 치루는 중 최근 인류는 ‘코로나19’라는 난공불락을 만나 유례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인류가 앓고 있다니. 어불성설이다. 낯설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일반화 되었다. 영혼의 피난처인 교회가 잠정 문을 닫았다. 사방이 막히면 비로소 하늘을 본다 했던가. 기도가 한숨처럼 나왔다. “하나님, 세상이 아픕니다. 한 말씀만 주옵소서….”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
칼럼
박보영
2020.05.0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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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중년이 되고 싶던 20대 시절이 있었어요. 어른이 되면서 생각이 자랄 무렵 무엇이 옳은지, 어떤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잘 살아야 하는지, 마치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의 혼돈과 공허함처럼 인생에 벽돌 한 장도 놓지 않은 느낌이었지요. 계획을 세워도 맘대로 되는 게 없고 그 방향이 맞는지 확신조차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어요. 저녁이 되어 잠이라도 잘라치면 삶의 갖가지 의문들이 끊임없이 올라와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그 땐 뭔가 다 알 것 같은 중년이 얼른 되고 싶었나 봅니다. 예전엔 옳다고 여겨 목숨을 걸고 지킨 것들이 지금 와서 보면 변한 것이 많고, 내가 사는 여기선 맞으나 다른 곳에선 아닌 그런 것 말고 과연 변치 않는 진리가 있을까? 하는 맘으로 읽기 시
칼럼
이종혜
2020.05.01 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