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마을의 아침풍경
새벽 5시도 안된 시간인데, 벌써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고, 부엌에서는 불을 때며 두런거리는 여인네들의 말소리도 들려옵니다. 전기 없는 오지 마을에 오면 아침형 인간이 가장 유리합니다. 해가 뜨면 생활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이들의 생활습관 때문입니다.
화장지를 손에 들고 숲으로 들어갑니다. 화장실이 따로 있을 리 없으니 이곳 사람들처럼 숲에서 용변을 봐야 합니다.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검은 돼지가 내 뒤를 따라옵니다. 걸음을 재촉하면 그것도 재촉하고 걸음을 멈추면 그것도 멈추고….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금방 알아챕니다.

허락된 짧은 시간에
머물렀던 원로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런 자연의 정취를 감상할 틈도 없이 걱정이 밀려 왔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외국인이 허가 없이 마을에 들어와 머무는 것이 불법입니다. 철저히 사상통제를 하기에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런 오지마을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길을 잃어 하룻밤 머물 수는 있지만 동이 트고 나면 바로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 촌장이 단파 라디오로 도시에 있는 당위원회와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마을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큰 고초를 당하기에 누구도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이 지역에 복음 전할 기회를 찾고자 그 오랜 시간 갖은 고생을 하며 도착했지만 환영받을 손님이 아니라 사상을 해치는 적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니 마을을 떠나기 전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땅만 밟는 것으로 만족하고 떠나야 합니다. 이제 서 너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원로 댁에서 마련해 준 아침상을 앞에 놓고도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혹독한 고생을 하며 온 이 땅에 기도를 남기고 떠나면 언젠가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아픈 청년을 만나
그런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한 아이가 들어오더니 원로에게 해열제를 구했습니다. 당연히 나에게서 약을 받아 달라는 요청입니다. 비상 구급약은 언제나 가방 안에 있기에 꺼내주면 되지만 그냥 약만 주는 것보다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명분이든 만들어 마을에 하루라도 더 머물러야 한다는 속마음이 작동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를 따라 가보니 삼십대 즈음의 청년이 땀이 범벅된 채 고통스런 얼굴로 누워 있었습니다. 머리를 만져보니 보통 열이 아니고 말라리아 환자들에게서 느꼈던 기분 나쁜 열이었습니다. 옆에 앉은 현지인 사역자는 가족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듣더니 병원에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병원을 가려고 해도 이 험한 산을 내려가 버스를 타고 10시간이 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웬만한 체력을 가진 건장한 사람조차 그 길을 오가다가는 거반 쓰러질 지경인데 이런 환자는 길 위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짧게 묵상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원로에게 이 환자를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도시로 나가는 것은 한 사람의 결정으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마을 원로들과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옥신각신 의견이 많은 듯합니다. 한참 후에야 원로로부터 청년 네 명을 대동하고 이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청년 네 명은 교대로 이 환자를 엎고 산을 달려야 합니다. 이 산마을을 한 번 오는 것도 목숨 건 모험이었는데 한 사람 살리겠다고 모든 일행이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워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십자가의 무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고립된 마을을 찾아 오느라 단지 체력의 한계선만 넘나들었을 뿐이지만, 주님은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서신 분입니다. 한 영혼 살리기 위해 고통과 죽음의 짐을 짊어지신 주님, 이제는 우리가 이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그 짐을 져야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무게보다 비교도 안 되게 가벼운 그 짐을…. (다음달에 이어집니다)

박태수
C.C.C. 국제본부 총재실에 있으며, 미전도종족 선교네트워크 All4UPG 대표를 맡고 있다.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땅 끝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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