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사람들 3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대한성서공회사>에는 성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경위, 즉 번역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과정을 따라 가보면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기록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찾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미국성서공회 기관지에 소개된 이수정(미국성서공회 기관지 '바이블 소사이어티 레코드' 1903년 12월호)

성경에 빠짐
구한말, 개혁적인 서북지역 청년들이 만주에서 서양선교사들과 접선하였고, 이를 계기로 우리말로 된 첫 성경이 나왔다. 조금 더 늦은 시기,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1882년 9월 19일. 이수정은 당시 수신사(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 박영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일본으로 갔다. 일본의 농업과 법률, 유편 및 조운(漕運) 시설을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거기서 그는 일본 농학자 쓰다 센(津田仙)을 만났다.
그와 친교를 다지면서 기독교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쓰다 센은 한문 신약성경을 그에게 주었다. 이후 이수정은 성경을 읽으며 기독교에 다가가다 하루는 이런 꿈을 꾼다.
“꿈속에서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옆구리에 한 보따리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책이냐’고 묻자 ‘당신네 나라에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책입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성경이라 하였다.”
이후 세례를 받게 되는데 세례를 집례 했던 녹스 목사는 그가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는 일본에 남아 ‘한국어 선생’을 하며 성경 번역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한번은 이수정의 동생이 ‘임무를 마쳤으면 귀국하라’고 요청했는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내 동포에게 철도나 전신기계나 기선보다도 더욱 필요한 것을 발견했다.”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보고 배워 조국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목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꿈꾸고 있었다.

한국의 마케도니아인
그의 성경 번역은 먼저 한문 성경을 읽기 편하도록 ‘토’를 다는 작업(현토, 懸吐)을 했는데, 이것이 <현토한한신약성경>이다. 이후 <마가복음>을 번역했다. 이 성경을 선교사 언더우드가 한국 입국 전에 보게 된다. 선교사가 피선교국에 입국하기 전, 제3국에서 번역 성경을 갖게 된 것은 세계 선교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성경 번역작업과 더불어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다름 아닌 조국인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었다. 세례문답 때 녹스 목사에게 선교사를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녹스는 이 사실을 본국에 처음으로 소개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이수정은 계속해서 미국교회에 “선교사를 한국에 보내달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바울의 꿈속에 나타나 유럽 선교의 길을 열게 만들었던 마케도니아인과 같이(사도행전 16:8-10) 이수정의 편지는 미국의 한국선교 시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일로 인해 이수정은 ‘한국의 마케도니아인’으로 불리게 된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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