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세가 점점 악화된 친구를 등에 업고 고산을 내려온 마을 청년들은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10시간이 넘게 쉬지도 못하고 달렸으니 고산지대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병원 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니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사는 것이 어쩌면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끝에 위치한 마을에서 간신히 차를 얻어 타고 가장 가까운 도시로 달렸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병원(정확히 말하면 진료소)도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수소문하여 의사의 집을 찾아갔더니 환자를 업고 그 먼 길을 달려온 정성이 가상했던지 아무 불평 없이 아픈 청년의 몸을 살펴주었다. 땀이 비 오듯 하는 청년의 몸을 살피더니 아무래도 맹장인 것 같다고 했다. 맹장,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맹장을 수술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도청 소재지와 같은 더 큰 도시로 나가야만 했다. 다시 여섯 시간 넘게 걸리는 도시로 가야 한다는 말에 온몸의 기운이 쑥 빠지는 느낌이었다. 도시를 통틀어 몇 대 안되는 차량을 소유한 한 사람을 기적같이 만나 흥정을 했는데 그 도시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비용은 몇 배나 더 냈지만….

좁은 차에 모두가 끼어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그제야 모두가 하루 종일 굶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산을 내려가는 데만 온 정신이 팔려 배고픈 것도 잊고 보낸 하루였다. 이미 불 꺼진 재래시장 어귀에 차를 세우고 혹시 음식을 구할 수 있을까 둘러보았다. 인적이 끊긴 시장에 술병을 쌓아놓고 술 마시는 서너 명이 있어 사정을 했더니 남은 음식을 모두 싸주었다. 술안주로 쓰려고 남겨둔 닭 내장, 참새구이, 쥐구이 등이었다. 우리 일행은 이게 웬 떡이냐며 그 음식들을 다 먹어 치웠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고 의사들이 출근하기를 기다리고…. 그렇게 또 두 세 시간을 보냈고, 병원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수술이 시작되어 청년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수술한 몸으로 바로 산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 병원 근처에 숙소를 마련하고 며칠을 더 머물렀다. 이왕 도시로 나온 김에 친구 청년들에게는 도시 구경도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쇼핑도 하라고 내보냈다. 친구를 위해 희생한 대가라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모두가 행복해 했고, 수술한 청년도 금방 회복이 되었다.

내게는 고통스런 산행을 다시 해야 하는 짐이 늘어난 것이었지만 이런 산행이라면 백번을 죽어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힘센 청년들이 밀고 끌어준 덕분에 죽을 것 같던 산행도 수월하게 마치고 마을에 도착했다. 일행보다 앞서 뛰어온 친구 청년의 전갈을 받고 나온 동네 사람들이 축제날처럼 즐거워했다. 첫날 나를 재워 주었던 원로는 물론이거니와 마을 어른들은 경쟁을 벌이듯 서로 자기 집으로 와서 머물라 했다. 몇 시간이면 마을에서 쫓겨나 다시 올 수가 없을 것 같던 첫날 상황에서 완전한 반전이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마을은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친척집 같은 곳이 되었다. 또한 함께 며칠을 고생했던 청년 중에서 두 명이 복음에 관심이 생겨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후에 도시에서 학교도 다니고 싶다고 부탁해 방법을 찾는 중이다. 아팠던 청년은 생명의 은인이라며 내가 그 근처 지방에만 가도 산에서 내려와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올 때는 언제나 산에서 뜯어온 야채와 산나물을 가져온다. 이따금 건강을 챙기라며 사람 키만 한 큰 뱀을 잡아와 기겁을 하기도 하지만 그 마음이 예쁘고 기특해 마음으로 챙기는 형제가 되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형제를 성경학교에 보내 사역자로 키워 이 고산지대 마을들을 다니며 복음 전하는 전도자로 만드는 것인데 그것도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박태수
C.C.C. 국제본부 총재실에 있으며, 미전도종족 선교네트워크 All4UPG 대표를 맡고 있다.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땅 끝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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