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서공회가 펴낸 <대한성서공회사>에는 성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경위, 즉 번역과 전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과정을 따라 가보면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민대홍 기자가 이 기록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찾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의주 청년들
미국 북장로회 여선교사 애니 베어드(1864-1916)의 소설 <따라 따라 예수 따라가네>는 19세기 후반 조선의 문화와 종교를 탐구한 끝에 나왔다. 당시 순기능을 상실한 한국 종교들의 모습들을 생동감 있게 전하며 허례허식으로 전락한 재래종교 유교와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식어가고, 왜곡된 샤머니즘이 어떻게 한국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했는지 기술한다. 나아가 그 시기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가 문화를 변혁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변혁’이 그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이며 개방적인 서북지방, 그 중에서도 의주 청년들의 뜨거운 가슴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이루어낸 ‘변혁’이었다. 최초로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존 로스(J. Ross, 1842-1915) 선교사가 그들 중 한 사람, 서상륜(누가복음, 요한복음 번역자. 훗날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 설립자 14명중 13명을 전도했다)에 대해 쓴 글을 보자.

“나는 그(서상륜)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그는 재능이 있었다. 자살의 검은 구름 속에 싸여 있던 무신론자가 누가복음을 번역했고 번역을 마치자 세례를 요청해 오는 자로 변화되었다. 그는 정부 당국의 어떠한 괴롭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쇄국정책으로 서양인들과 내통하는 자를 엄벌에 처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서상륜의 이와 같은 행동은 생명을 내건 것이었다.
서상륜과 같은 이들은 한문과 만주어에 능통하였다. 대개 상인으로서, 경제력을 지닌 지식인으로서 그들은 다른 지방의 어느 계층보다 독립적이며 개방적이었다. 이들은 당시 암울했던 조선 사회를 바라보며 새로운 문화와 사회질서에 대한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이응찬이다. 그는 로스 선교사를 가장 먼저 만났던 사람으로, 진취적이며 개방적인 의주 청년이었다. 로스 선교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함께 <한국어교본>을 펴냈으며, 그가 본국으로 떠나 있을 때에는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7-1905) 선교사의 어학선생이 되기도 했다.

성경 번역을 위한 준비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지식이 늘기 시작하는 1874년부터 로스 선교사는 이응찬을 만나 <한국어교본> (Corean Primer)를 간행하는데 그의 교본은 어설프고 조잡하고 표준어가 아닌 의주 방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양인을 위한 최초의 한국어 교재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파송 선교사였던 로스와 매킨타이어는 자신이 직접 한국 선교를 하지 못했지만 곧 시작될 한국 선교를 준비한 선교사다. 특히 소수의 학자층만이 아닌 부녀자와 어린이까지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성경 번역은 1천만이 넘는 한국인들을 일깨운 문화 변혁의 동력이 된다.
이를 밑바탕으로 “한국 선교의 역사는 곧 성경 보급의 역사다”라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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