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일입니다. 장애인 사역을 하시는 회장님께서 “어머니라 부르는 어려운 어른을 위해 노래해주면 어떻겠노?”하고 물어오셨습니다.
그 어머님은 시골 단칸방에 살고 계셨습니다. 샷시 문을 여니 좁다란 마루가 조금은 숨을 쉬게 해 주는 집이었습니다.
인사를 건네는데, 어머님은 “아야! 아야!” 하시며 찡그린 인상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맞아주셨습니다. 어머니는 15년 전에 끓는 물을 실수로 쏟게 되어 목 아래부터 발등까지 전신화상을 입으셨는데, 그 후로 밤낮없이 살갗이 당겨지는 통증을 달고 사십니다. 어머니는 시집 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남편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화상을 입은 후 남편이 집에 들어오질 않더니 급기야 사라졌습니다. 떠난 것입니다.
통증이 몰려오고 외로움과 서러움이 밀려올 때마다 하소연을 들어줄 이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일상을 15년 넘게 이어오며 힘들 때마다 하는 전화에 회장님은 어머니의 호소를 다 들어주셨고, 통화를 마칠 땐 꼭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찾아드는 평안으로 어머님은 한숨 주무셨답니다.

아들이 술 먹고 엄마를 때리고 아비처럼 난동을 부렸다는 말에 귀를 의심했습니다. 지금은 그 아들이 집을 떠나 공장에 취직해 떨어져 살지만 그때 어머니의 낮 시간은 아들이 집어던진 것을 치우는 시간이었다고요. 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울음을 터트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빨리 천국가고 싶어요! 제발 빨리 가고 싶어요.”
회장님은 어머니께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늘 전화 받아주고 기도해주면서 가끔 찾아가 곁에 있어줄 뿐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님께 “같이 찬송해요!” 하고 기타를 꺼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 한 줄에 서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이 노랫말이 어머님께 해당되나?’ 몸과 마음, 아파 쉴 곳 없어 고통을 호소하시는데….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찬송가 한 곡을 더 불렀습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노래는 어떠실까? 주 예수와 동행은 하는데, 하늘나라라 하는데, “아야! 아야!” 앓는 소리는 날로 커져만 가는데…. 찬송보다 차라리 침묵이 더 나았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노래 끝에 묻어났습니다.

그날 한 점 위로는커녕 얼른 기타를 가방에 집어넣고 부끄러운 등을 보이며 어머님 집을 나섰습니다. 회장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역’이란 무엇인가, 나는 정말 회장님처럼 그 오랜 세월 한결같이 그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콧등이 시큰거립니다. 생각해보면 이름 없이, 빛 없이 어느 아름살이를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 삶을 잠시만 돌아보아도 이 회장님의 온기가 가득합니다. 가끔 옷 자랑, 신발 자랑을 하시는데, 구제가게에서 누가 사주더라! 하시는 것입니다. 한 번씩 불쑥 전화해 “오뎅 안 사줄끼가?”합니다. 먼 거리를 동행할 땐 꼭 과자 한 두 봉지 갖고 오십니다. 아이처럼 과자 부스러기 시트에 떨어뜨릴 때마다 저는 야단 비슷하게 투덜거리고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회장님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전화 드려 그 어머니께서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여쭤봐야겠습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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