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가정교회를 시작
하룸과 칸제이는 사역자 카란드라의 아들과 딸입니다. 네팔에 있는 아버지 고향 마을로 파송된 인도 마을 교회의 선교사들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돈을 벌려고 국경을 넘었지만 그들은 복음을 들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아버지의 고향 마을에서 처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정 때문인지 아니면 복음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는지 개척한 지 얼마 안 되어 작은 가정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0Km 반경 안의 유일한 교회로 섰습니다.

가난한 교회, 자립 어떻게
사역을 시작한 하룸과 칸제이 남매에게 찾아온 숙제중 하나는 재정이었습니다. 주민들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파송한 인도 마을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보내준다 하더라도 은행이나 상점이 있는 도시까지는 차로 2시간을 가야 하고, 대중교통도 없어 외부에서 도움을 주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립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주민 대부분은 농사를 지어 생존하며, 근처 장터에서는 물물교환에 가까운 상업 활동만 하는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이런 저런 시장조사도 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그나마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사업은 빵가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쌀과 빵이 주식인 이 나라에서 빵은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생필품이었습니다.
밀농사를 하는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공급 계획을 짜고, 소가 끄는 거대한 바위 맷돌로 탈곡을 하는 정미소와도 흥정을 했습니다. 마침 시장에 있는 창고가 수리를 끝내고 임대를 해준다고 해서 일은 순조롭게 진행이 됐습니다. 진흙을 이겨 화덕을 만들고, 꼭 필요한 제빵 도구들은 도시에서 사왔습니다. 시험 삼아 주식으로 쓰는 빵을 만들기도 하고 간식용 빵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대량 생산이 쉽지는 않았지만 손에 익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가게가 안정되면 외부의 도움이 없이도 선교에 집중할 수가 있고, 기도하던 대로 인근 마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빵가게와 코로나
그러나 빵가게가 막 문을 열 즈음, 코로나 바이러스가 네팔에도 밀려들어왔습니다. 시골이지만 바이러스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주민들은 온갖 괴담에 불안해했습니다. 정부는 이동 금지령을 내렸고, 하나밖에 없는 작은 시장도 폐쇄되었습니다. 생명선과 같은 농사를 중단할 수 없다는 마을 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마을 자경단은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폭행을 가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빵가게 계획도 멈춰 섰습니다.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도 불가능해졌고, 마당에서 모이던 주일 예배도 강제 중단이 되었습니다. 하룸과 칸제이 남매 가정은 외딴 무인도에 갇힌 것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무너져 내린 꿈 위에서
한 달 가까운 격리 기간이 끝나고 사람들은 조금씩 외출을 시작했지만 빵가게는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는 주인 없이 버려진 가게 안의 모든 것들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도구들도 곰팡이와 벌레로 가득했고 쌓아둔 재료들은 모두 썩어 버렸습니다. 꿈은 하루아침에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남매는 폐허가 된 빵가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실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도 고향을 떠날 때 꿈꿨던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복음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하신 것처럼 이곳에도 새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고 그들은 고백했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한 단계 올라가는 믿음을 위해 이 어려움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두 손을 드는 순간 주님이 일을 시작하시는 걸 보여 주시려고….

박태수
C.C.C. 국제본부 총재실에 있으며, 미전도종족 선교네트워크 All4UPG 대표를 맡고 있다.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땅 끝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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