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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진 씨 안에 존재하는 ‘두 엄마’
문지현의 감정이 꽃피는 순간
[109호] 2011년 06월 05일 (일) 문지현 @


희진 씨는 노력해서 약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어머니가 바라던 희진 씨의 모습이었다. 희진 씨는 1학년 봄에 같은 과 선배와 사랑에 빠졌고, 임신을 했고, 서둘러 결혼을 했다. 몇 번이나 휴학하면서 겨우 졸업했지만, 약사고시는 볼 생각조차 못했다. 딸의 선택이 너무나 싫었던 어머니는 희진 씨와 몹시 다투다가 결국 연락을 끊다시피 했다.

희진 씨는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네요, 그 자리에 엄마가…계셨네요.” 두 아이의 엄마이며 단란한 가정의 안주인인 희진 씨는 주요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희진 씨의 우울증은 경력이 길다. 단지 계절을 타는 거라고 생각했던 때까지 합하면 더 오래되었다. 희진 씨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꽃이 화사하게 피는 4-5월만 되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겨우내 우울했던 사람들도 봄날의 햇볕을 쬐면 좋아진다고들 하는데 희진 씨는 반대였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희진 씨의 생일과, 결혼기념일과,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몰려있었다.

희진 씨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얼마 안 되어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희진 씨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재를 절대로 잊지 않았다. 외동딸인 희진 씨를 잘 키우려고 있는 힘을 다하셨다. 주눅 들면 안 된다면서 뭐든 제일 좋은 것들로 갖추어 주었다. 어머니는 희진 씨가 전문직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라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가,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엄마에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희진 씨는 노력해서 약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어머니가 바라던 희진 씨의 모습이었다. 희진 씨는 1학년 봄에 같은 과 선배와 사랑에 빠졌고, 임신을 했고, 서둘러 결혼을 했다. 몇 번이나 휴학하면서 겨우 졸업했지만, 약사고시는 볼 생각조차 못했다. 딸의 선택이 너무나 싫었던 어머니는 희진 씨와 몹시 다투다가 결국 연락을 끊다시피 했다. 희진 씨와 남편은 나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지만, 희진 씨 어머니의 소망은 ‘딸의 행복한 삶’이 아닌 ‘내가 꿈꾼 대로 자라 준 딸’이었기 때문에 당신 마음에 차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화해를 시도해 보던 희진 씨도 자꾸 마음의 상처를 입으니 나중에는 슬슬 어머니를 피하게 됐다. 그리고 어머니는 암에 걸리셨고, 손조차 써보지 못한 채 어느 해 봄날에 희진 씨 곁을 떠나고 말았다.

무기력이 너무 심해서 하루 종일 잠만 자고 늘어져서 지내던 희진 씨는 교회의 아는 집사님을 통해 지난 해 봄에 병원을 찾았다. 심한 무기력으로 상담조차 버거워하던 희진 씨는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천천히 회복되었다. 그렇지만 이만하면 좋아지겠지, 할 무렵이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기 일쑤였고, 다시 치료를 받아 좋아질 만하면 병원에 오기를 또 미루곤 했다. 결국 올 봄, 어머니의 기일까지 지내고는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절대로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하고 왔어요, 선생님.” 희진 씨는 알고 있었다. 좋아질 만하면 치료를 중단하는 건 회복과 치유로부터의 도피였다. 고통스러운 우울증에서 좋아지고 싶을 텐데,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식사조차 챙겨주지 못하고 집안이 난장판이 되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늘어져 있는 자기의 모습이 정말 싫을 텐데, 치료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좋아진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안 오는 건 자학이었다. 치료의 과정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주요우울증을 앓다보면 끈기도 인내도 다 녹아버리기 쉽다.
거기에다 희진 씨의 우울증은 낫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를 갖추고 있었는데, 바로 죄책감이었다. 상담을 하면서 희진 씨는 자기 안에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당신 자신이 초자아의 화신과도 같은 분이었다. 그 힘으로 팍팍한 삶을 견뎌 내셨겠지만, 너무 강한 초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빠지는 함정에 잠겨 살았다. 곧 어머니는 누구나 어머니가 정한 도덕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잠재적인 위험요소인 셈이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신체 질병으로 입원한 사람 중 75%가 정서적 문제로 병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이들은 병이라는 도구로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는 셈이다. 병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아무 문제없이 ‘뻔뻔하게’ 잘 지내는 게 더 힘들어 병을 택한다고 할 수 있다. 희진 씨도 어머니를 향한 죄책감이 너무 커서, 자기가 잘 지내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었는지 모른다.

희진 씨의 봄은 어머니의 시선으로 볼 때 실망과 탄식뿐인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출생부터 : ‘내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대학 입학 후 곧 연애에 빠졌던 자신의 모습도 : ‘공부하라고 보낸 대학에서 덜컥 남자를 만나고 결혼도 하기 전에 다짜고짜 임신부터 하고, 엄마가 얼마나 부끄러우셨을까!’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으시기까지 : ‘딸의 따뜻한 병간호도 잘 못 받고 가신 길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러니 희진 씨의 봄이 그렇게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봄만 되면 힘들던 그 자리에서 발견한 엄마의 모습에 희진 씨는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치료가 진행되면서 희진 씨는 조금씩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자기 안의 엄마 모습은 실제 엄마가 아니었다. 우울감이 심해지면 뭐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깊어지기 때문에, 희진 씨가 받아들인 엄마의 시각은 실제 엄마 것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병 때문에 일그러진 부분들이 있었다. 더디고 지루한 치료 과정을 지나면서 희진 씨는 온전한 어머니의 시각, 온전한 자신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생일은 : “(엄마) 그래도 이렇게 귀한 딸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니! 네가 있어서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구나.”
대학 입학과 연애의 시작은 : “(엄마) 나는 이룰 수 없던 것들을 네가 이루는 걸 보는 게 정말 대견하다. 내가 원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내가 누리지 못했던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마음은 아프지만 한편으론 부럽기도 해.”
어머니의 임종은 : “(엄마) 함께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나의 소중한 딸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야. 우리 삶이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게 아님을 알기에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선생님. 다음 봄이 되어 봐야 정말로 제 마음 가운데 화해가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겠지만…지금으로서는 새로 만난 저희 엄마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기뻐요.” 진료실 문을 닫으며 나가는 희진 씨 어깨에 늦은 봄날의 빛나는 햇빛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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