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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정을 찾아 여행을 떠나며
[102호] 2011년 02월 23일 (수) 문지현 @

충분히 사랑할 수 있고 두려우면 솔직히 두려워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어서 그에 적합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화를 내지만, 자기를 잘 조절할 수 있어서 화 폭탄이 자폭으로도 폭탄 테러로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 이게 우리 모두 안에 계획되어 있던 감정의 모습이었다.


아침 드라마를 볼 때마다 움찔한다. 꾸준히 보던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아침 드라마의 감정 톤은 무척 격렬한 편이다. 이 장면에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화를 내고, 저 장면에서는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런가 하면 출퇴근길에 만나는 거리의 사람들은 무척 단조로운 톤의 얼굴이다. 대부분은 무표정 무감동에 입을 다문 표정이다. 외국인들 눈에는 이런 모습이 “방금 싸운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감정의 홍수가, 또 한쪽에서는 감정의 사막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지하수가 고루 공급되고 때를 따라 단비까지 내린다면 비옥한 땅위에 다양한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날 텐데. 우리 눈에 보이는 감정의 세상은 먼지 날리는 사막과 홍수가 범람하는 진흙 지대가 모자이크처럼 뒤섞인 듯하다. 

‘감정’이란 무엇일까. 정신과학 교과서에 따르면 감정(emotion)은 정신적, 신체적, 행동적 요소를 가지는 다양한 느낌(feeling)이다. 마음(정신)에서 느껴지는 즐거움, 입가에 빙긋 떠오르는 미소,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 경쾌한 발걸음을 감정이라고 한다. 이런 감정이 외적 표현으로 드러나는 것을 정서(affect)로 말한다.

내부에서 느끼는 감정과 외부로 드러나는 정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속으로는 괴로우면서도 겉으로 보여주는 정서는 밝은 척할 수 있다. 정서는 제한적이거나, 둔마되거나(blunted), 단조롭거나, 다양하거나, 불안정하여 쉽게 변하거나, 적절하거나 혹은 부적절하다는 식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갖는다. 참고로 기분(mood)은 광범위하고 지속되는 느낌의 톤으로, 내적으로 경험되는 것을 말하며 내면적 느낌의 외부적 표현인 정서와 구별된다. 기분은 한 사람의 행동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인식 전체에 뚜렷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다가 갑자기 안 좋은 내용의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있다면 기분이 어떤 식으로 한 사람의 세상을 휘젓는지 잘 알 것이다.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의 저자 필립 스위하트는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은 흑백으로만 구성되어도 괜찮았겠지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감정의 세상도 그렇다. 좋고 나쁜 감정만으로 구분될 수도 있었겠지만 감정들은 무척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우리들은 다채로운 감정들을 누리면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생활 속에선 그렇지 않아 보인다. 사양이 좋은 컴퓨터를 가지고 계산기로만 사용하는 셈이다. 감정은 창조될 때부터 우리 안에 계획된 영역이다. 갓난아기는 생후 두 달이 되기 전에 사랑,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아기들은 기쁨을 겉으로 드러내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반응할 수도 있다.


생후 3-4개월이 되면 벌써 아기들은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기 시작한다. 백일 사진을 찍는 아기들을 떠올려보자. 이 나이만 되어도 아기들은 소리 내서 웃고 미소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감정만 늘어나는 건 아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분노를 겉으로 드러낼 수 있다. 감정의 자기 조절 기능은 첫 돌을 맞을 때까지 꾸준히 성숙해간다. 그렇지만 자기 조절이라고 해서 무조건 꾹 참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적응하도록 강요되는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부끄러움이나 자랑스러움 같은 감정, 부러움, 당황스러움 같은 감정들이 1-2세 사이에 나타난다. 이제 겨우 언어로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지만, 벌써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을 배우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 주목 받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나이인 만 3-6세가 되면 다양한 감정의 원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을 조절하고 이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말로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나타내거나)을 찾기 시작한다. 어른들을 동일시하면서 적응력을 키워간다. 이해력이 커지는 만큼 이전 발달 시기에 싹이 나기 시작했던 공감 능력이 자라난다. 자기 조절 기능은 더 커지고, 공격성은 경쟁심으로 발전한다. 만 5세가 되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에 민감해지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정서적 반응성(response)이 행동적 반동성(reaction)보다 더 커진다. 즉 누가 자기를 때릴 때 바로 맞받아치기보다 그러지 말라면서 화를 낼 수 있다.

초등학생 시기인 만 7-11세에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반응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좀 더 잘 인식하게 된다. 초기부터 모습을 보였던 공감은 이타주의로 발전하며, 초자아가 우세해진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서, ‘제대로 발달이 된’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면 좋겠다. 충분히 사랑할 수 있고 두려우면 솔직히 두려워할 수 있는 사람. 기뻐할 때 크게 기뻐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어서 그에 적합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화를 내지만, 자기를 잘 조절할 수 있어서 화 폭탄이 자폭으로도 폭탄 테러로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며, 사랑 받음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그 외 생산적인 방법으로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는 사람. 혹시 잘못해서 비판을 받으면 충분히 수용해서 자신의 잘못을 수정하고, 그 얘기를 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정말 멋진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한편으로는 성인군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형의 누군가가 가졌으면 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원래는 이게 우리 모두 안에 계획되어 있던 감정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그렇다면 우리들은 왜 태초의 온전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가진 모습에서 멀어졌을까. 완전한 회복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나 가능하더라도, 엉망이 된 감정 때문에 현재진행형으로 입고 있는 상처의 고통을 덜 방법들은 없을까.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아픔이라도 덜어야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으니 그런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다.

앞으로 이 코너에서는 이렇게 상처 입은 우리들의 감정을 돌아보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나타나며, 문제의 원인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막연하게 추상적인 개념만이 아닌, 조금 더 구체적인 감정의 뿌리가 있는 자리, 즉 감정이 비롯되는 뇌에 대한 관찰 등을 통해 다각도로 감정을 짚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회복을 꿈꿀 수 있는 방법까지 찾아보는 시도를 하려고 한다.

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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