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을 느끼는 마음의 자리는 어디일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뇌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아직까지 속 시원한 대답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건지, 그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렇지만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또 다른 친구를 만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 친구의 개인적인 치부를 포함한 각종 험담을 12종 세트처럼 하나 가득 늘어놓았다. 맞장구를 쳐주니 신이 나서 열심히 비난을 쏟아내고 돌아오는 길, 혼자 있는 시간이 되니 ‘그런 얘기까지 다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마음속으로부터 뜨끔한 느낌이 올라온다. 부끄러운 죄책감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마음의 자리는 어디일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뇌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아직까지 속 시원한 대답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먹고 싶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계속 먹어대거나 성적인 충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본능적인 욕구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은 무척이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식욕이나 성욕에 더하여 분노 충동까지 보인다면 그의 옆에 있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당황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다. 본능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동물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뇌의 어딘가에 이상이 생겨도 이렇게 될 수 있다.


뇌에 문제 생기면 도덕적 판단이 어렵다

최근의 뇌 연구들은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를 밝혀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일 관심이 모아지는 곳은 ‘안와전두엽’(orbitofrontal lobe)이라는 자리이다. 대뇌의 앞쪽 밑바닥이자 안구(눈)가 들어 있는 안와 위쪽 근처에 해당하는데, 어떤 이유로든 이 부위가 손상되면 감정의 고삐가 확 풀린 듯한 사람이 된다. 안와전두엽이 망가진 사람들은 기본적인 충동을 조절하지 못한다. 아니, 조절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관습적인 도덕적 금지들이 느슨해져 있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능력이 망가져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동을 일삼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벌 받을까 두려워서라도 행동이 변화되는 일 같은 게 전혀 없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안와전두엽 손상 환자들을 ‘가성 사이코패스 증후군’(pseudo psychopathic syndro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짜 사이코패스, 즉 실제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죄책감을 못 느끼고 도덕률에 어긋나는 행동을 밥 먹듯 하는 모습이 사이코패스와 영락없이 닮았기에 붙인 이름이다.
사이코패스는 일반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연쇄 살인범의 이름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사이코패스인 연쇄 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까지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사이코패스보다 더 넓은 범위의 성격장애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범법 행위를 일삼으며 충동적인 특성을 가진다) 환자에서 안와전두엽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을 보면 도덕적 판단과 가치체계의 자리는 안와전두엽 부근 어딘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뇌의 부위를 들여다보노라면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하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몇 천 년을 건너뛰는 공감을 경험한다.


생후 첫 한 달이 감정 조절을 좌우한다

뇌, 특히 안와전두엽과 감정의 관계를 생각할 때 빠뜨리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뇌에 대하여 잘못 알려진 일반상식 가운데 하나는 태어날 때 뇌세포의 수가 가장 많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뇌세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다르다. 태어난 후에도 뇌에서는 지속적으로 발달이 진행된다. 설령 뇌세포의 수는 줄어들더라도 뇌세포와 뇌세포 사이의 연결고리(이를 시냅스라고 한다)는 계속 늘어난다. 뱃속에서뿐 아니라 태어난 후에도 뇌 발달이 계속되기 때문에 생애 초기에 아기가 경험하는 환경은 무척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생후 첫 한 달 동안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이 안와전두피질의 정상적 발달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첫 한 달을 지내면 안와전두엽이 잘 발달되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생존을 걱정하면서 자라면 안와전두엽이 손상된다는 이야기이다. 조그마한 갓난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이지만, 실은 주변 환경 및 돌봐주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전부 뇌 안에 입력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기에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안와전두피질이 손상되어서 나중에 자랐을 때 정신과적 질환을 가지게 될 유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갓난아기 시절에 다양한 시각 자극을 주는 게 아이들의 뇌 발달에 좋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누워 있는 아기의 시선이 닿는 곳에 예쁜 모빌을 달아주거나 다채로운 색깔의 장난감으로 아기의 시각을 즐겁게 해주는 등 감각 자극을 적당히 잘 해주면 시각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후두엽 시각 피질)가 발달된다. 반대로 자극이 박탈된 경우에는 시각 피질의 발달이 지연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 시각적 자극과 후두엽 발달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하듯이, 사회적 상호작용과 전두엽 발달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자라면서 거짓말이나 좀도둑질 같은 사소한 말썽을 달고 다닌다는 보고도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증후군(ADHD,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을 가진 어린이의 전두엽 기능에 이상이 있다고 하고, ADHD 환자의 27%가 반사회성 인격 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보고도 있는 걸 보면 도덕적 판단과 사회적 참을성에서 전두엽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문지현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