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현의 감정이 꽃피는 순간


“싱겁게 먹어야 웰빙이야!” 하지만 맛없는 걸 억지로 먹는 것까지 웰빙일까? 반대로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서 음식이 입에 짝짝 붙는다고 해서 좋은 음식일까?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화학조미료를 먹고 있다는 불안함에 숟가락을 놓게 될 것이다. 조미료는 너무 많이 들어가도 고민이고, 너무 안 들어가도 고민이다. 폴 투르니에는 죄책감을 “우리 일상생활의 조미료”라고 말했다. 이 죄책감이라는 조미료 역시 부족해도 과해도 문제이다.


죄책감은 일상의 ‘조미료’

경희 양은 중3 소녀이다. 그렇지만 학교에 안 나간 지 한참 됐다. 함께 놀던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점심시간 무렵에 학교 운동장을 찾아가기는 하지만 교실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는다. 밤이 되면 경희 양은 자기와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려 앳된 얼굴에 두꺼운 화장을 하고 신분증 확인이 소홀한 작은 가게에서 술을 산다. 그래야 자기들과 놀아주는 오빠들을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빠들과 술을 마시면서 야한 농담을 하고 히히덕거릴 때는 어른이라도 된 느낌에 기분이 짜릿했다.

얼마 전에는 경희네 무리들을 째려보면서 지나가는 여자애를 골목으로 몰아넣고 때려준 일도 있다. 그 애의 부모님이 학교폭력상담센터에 신고하는 바람에 경희 양의 집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경희 양의 책가방에는 편의점에서 훔친 액세서리나 간식거리들이 수북하다. 돈 주고 살 만한 물건들은 아니지만 훔쳐도 걸리지 않을 때 느끼는 쾌감 때문에 이런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
28세 청년 민수 씨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다닐 생각도 없다. 낮 시간에는 자기 방에서 문을 잠근 채 잠을 잔다. 해가 떨어지면 일어나서 대충 밥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민수 씨가 주로 가는 곳은 두 군데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만한 술집이거나, 술 마실 돈을 벌기 위해 인터넷 도박을 하는 PC방이 그곳이다. 인터넷 도박에 손대기 전에는 번잡한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에 고의로 몸을 닿게 한 뒤 운전자를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을 자주 했다. 합의금을 많이 받을 목적으로 입원까지 하는 일이 잦아지자, 반복되는 교통사고 때문에 민수 씨를 의심한 보험회사가 민수 씨를 신고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뒤에는 더 이상 이 방법을 써서 돈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징역생활을 해 본 친구들에게 얼마나 거기 생활이 ‘구린지’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수 씨는 무슨 수를 쓰든 자기 손에 돈을 넣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거나 힘을 들여 노력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줄담배를 피우면서 밤을 새워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다.


사회가 꺼리는 ‘위험한 그들’

경희 양은 죄책감 없이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는 초자아 공백(superego lacunae)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초자아는 자기 안에서 “이런 일은 하면 안 된다, 이런 일을 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해 주는 작은 선생님이라고 설명했다. 초자아가 자리를 비우면? 선생님이 계실 때는 조용히 책을 보던 아이들이,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놀고 싸우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초자아가 일깨워주는 죄책감이 없다면, 지금 하는 일들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미칠 영향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질러버리게 된다. 경희 양은 네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 할머니 고모 등 여러 사람들의 손을 전전하다가 열두 살이 되어서야 재혼한 아버지의 가정으로 오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양육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정서적 박탈감을 느낀다. 자존감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아지고, 이는 무의식적인 분노로 이어진다. 적절한 제한선이 주어지지 않은 채 양육된 아이들은 초자아 형성에 꼭 필요한 부모의 금지를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양심이 결핍된다.

민수 씨 같은 사람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위배하는 광범위한 양상으로 드러나는데 그 진단 기준 가운데 하나가 양심의 가책(remorse)이 결여된 모습이다. 즉 이들은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학대하거나,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훔친 것에 대해 합리화를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못 느끼고 티끌만큼의 죄책감조차 경험하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적절한 사회생활을 위해 죄책감만큼 필요한 감정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죄책감은 사람들의 사회생활이 ‘제대로’ 굴러가게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만일 죄책감이라는 조미료가 경희 양이나 민수 씨의 삶에 뿌려졌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우리는 충분히 그려볼 수가 있다. 그들은 지금 조미료가 필요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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