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꾸었던 꿈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이루고 싶은 목적이기도

특집 : 그래도 꿈꿔야 한다

만약 당신이 중년기에 접어들었다면, 당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못 들어본 질문이 있을 것이다. 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이 꿈꾸는 삶은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

1년 전 한 40대 주부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 여성은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지독한 우울을 토로하고 있었다. 남편은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했으며, 자녀들도 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뭔가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우울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가다가 그녀가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기만 했었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심지어 사춘기 때에도 항상 착한 막내딸로 살아왔던 그녀는 늘 부모님과 오빠들을 배려했다. 학창 시절 때 공부도 꽤 했지만, 부모님이 취업이 잘 된다고 말했던 과에 입학했고, 그러다 결혼을 해서 첫째 아이를 낳고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를 돌보고 남편을 챙기면서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속이 뻥 뚫려 있는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니 누군가를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았건만 지금 자신의 삶에 남은 것이 없었다. 이런 삶은 자신이 원했던 삶이 아니라고 말했다.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뒤집어보면 원래 ‘원했던 삶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다가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원래 꿈꾸던 삶은 무엇이었나요?”

지금과는 달랐어요

이런 질문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당황하던 그녀는 질문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좀 더 좋아했던 시기, 즉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뒤져보다가 새로운 자신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응적이고 누군가에게 맞춰주고 있는 지금 자신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는 매우 활기차고 열정적인 성격이었다. 패션 감각도 있었고, 무엇인가를 해도 똑 부러지게 잘했으며, 리더십도 남달라서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남학생 비율이 훨씬 높았던 시절, 6학년 반장 선거에 나가서도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이 되었다고 했다.

꿈을 조금씩 이뤄나가기

그 이후 몇 번의 만남 동안 그러한 이야기를 지속했다. 그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그녀가 항상 입고 오던 회색 옷은 생동감이 있는 옷으로 바뀌었다. 헤어스타일도 달라지기 시작했고, 오래전부터 하지 않았던 화장도 하기 시작했다. 외관상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얼굴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찡그린 표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그 대신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그녀의 소식을 접했다. 그녀는 지금 어린 시절 꿈꾸었던 꿈을 지금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다.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고, 잃어버린 것을 조금씩 되찾으려 하자 삶에 자리 잡은 어두운 공허는 사라지고 희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시절엔 꿈꿨지만

당신이 꿈꾸는 삶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여전히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예전에는 꿈 많은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맞는 말이다. 어린아이는 꿈을 꾼다. 어느 경우엔 우주 비행사가 된다거나 대통령이 된다는 등 비현실적인 꿈도 있지만, 아이의 표정은 밝다. 꿈이 있는 사람은 밝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현실을 마주한다.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기 시작한다. “네가 그렇게 해서 뭘 할 수 있겠니?”와 같은 매서운 평가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몸의 크기가 커질수록 고개는 점점 내려간다.

그 자리에 훨씬 큰 몸집을 가지게 되었으나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자신만이 남아있다. 그 사람의 어깨는 축 처져 있고, 머리엔 현실적인 고민만이 가득하다. 땅에 시선을 두고 있고 시선이 고정된 곳에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이 있다. 지하철이든, 회사에서든, 소파에서든, 침대에서도 그것을 계속 만지작거린다. 걱정이 몰려오니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안 오니 스마트폰을 본다. 스마트폰을 보니 잠이 오지 않는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중년의 위기 속, 오히려

‘중년기’. 누군가는 당신에게 직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했다가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 수 있기에 위기감을 느낀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는 어른의 위치에 있지만,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자리이다. 이 당혹스러운 역설 앞에서 중년기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 시선을 두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내면에서 우리가 원래 꿈꾸었던 나의 모습과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분석심리학자이자 내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칼 융(1875-1961) 역시 내면에 대한 주의 깊은 성찰에서 스스로가 가진 가능성과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어떤 덫에 걸린 것 같은 위기감을 촉발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고독과 외로움이 밀려올 때, 허무함과 공허함으로 가득할 때, 당신은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을 다시 회상해 볼 수 있다. 앞서 만났던 한 중년 여성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처럼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여전히 당신의 삶은 희망이 있는 삶이다.

삶의 중턱을 걷다 보면 잠시 앉고 싶어진다. 지난날 정신없이 달려왔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어디를 올라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숙고해볼 수 있다. 이 길이 맞는지 점검해 볼 수도 있다.

걱정과 염려로 둘러싸여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걱정 대신 ‘내가 가장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과거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어린 시절이 있다면 그때의 경험이 왜 떠올랐을지 숙고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를 꿈꿔 볼 수도 있다. 1년 뒤에 이루고 싶은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10년 뒤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려보고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꾸려볼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에서 발견한 값진 진주를 통해 미래를 다시 꿈꿀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꿈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꿈은 과거에 꾸었던 꿈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내가 이루고 싶은 목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은 과거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미래에서 성취되기도 한다.

중년기는 삶의 중반이라는 뜻이지만 후반전의 시작이다. 전반전을 회고해 봤을 때, 1:0으로 지고 있다면 어떻게 역전할 수 있을지 노려볼 수도 있다. 전반전의 삶이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삶이었다면, 후반전의 삶은 다시 삶을 정돈하고 원래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세워보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여전히 꿈을 꾸기 때문에 삶에 희망이 있다. 어려운 삶, 어두운 불안이라는 현실의 장벽에서 삶에 언뜻 비치는 서광의 정체는 바로 당신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이 바로 당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져 있다. 고요한 밤, 잠자리에 들 때 몇 가지를 스스로 질문해 보면 어떨까?

* 당신이 오랫동안 미루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당신이 남몰래 꿈꿔왔던 것은 무엇인가?

* 당신이 어려운 현실에서도 붙들어야 하는 평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 당신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인가?

* 당신이 꿈꾸는 삶은 무엇인가?

이헌주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연구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 여러 심리/정서 관련 과목을 맡고 있으며, 다수의 기업과 교회에서 상담심리에 관련된 스트레스 관리, 감정 코칭, 관계 증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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