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소리도서관 정민교 목사

특집 : 그래도 꿈꿔야 한다

소리도서관을 만들게 된 이유

“시각장애인 신학생이 읽을 수 있는 신학도서가 없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것이 이 사역의 시작입니다. 조사해보니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구약 주석은 한 권 밖에 없더군요.”

2009년 AL 미니스트리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시각장애인 인식 개선과 시각장애 선교를 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국내 최초 기독교 전자도서관인 ‘AL-소리도서관’을 설립하여 시각장애가 있는 다음 세대 및 장년, 목회자들 양육과 목회 연구 지원에 필요한 기독교 도서를 데이지 파일로 제작하여 무료로 보급하고 있는 정민교 목사(부산 흰여울교회)(사진). 그래서 움직였다. 시각장애인의 신앙생활과 목회자 양성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사명이라 여긴 것.

“전국에 공식적으로 25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있어요. 그러나 복음화율이 1% 미만입니다. 40년 전 수치와 똑같아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독교 도서가 보급이 안 되고 있어서라고 판단했습니다. 시각장애인용 도서 현황을 조사해 보니, 일반도서나 에세이는 많지만 개신교 서적은 불과 2천여 권 뿐이었어요. 게다가 그중에는 이단이나 사이비 도서도 섞여 있더군요. 시각장애인 중 귀하게도 목회자로 훈련받는 이들이 나오는데, 그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이 볼 성경과 주석자료도, 교재도 거의 없다는 충격적인 현실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시각장애인 전용 기독교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음이 모였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각장애인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접근하기 편한 웹 접근성을 갖춘 홈페이지, 제작비만 2천만 원이 넘는데. 하지만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크라우드 펀딩을 했고, 뜻을 같이한 이들로 인해 두 달 반 만에 목표치가 채워졌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서관, 그러나 이번에는 그 도서관에 실릴 책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했다. 읽을 책이 있어야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정 목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출판사마다 문을 두드리고 설명하고 협약을 맺고 책을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다. 데이지 파일로 제작하여 올리기 때문에 유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데이지(DAISY) 도서란 시각장애인 그리고 저시력인과 읽기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국제규격으로 마련된 e-북 형식의 책을 가리킵니다. 장애인 사용자들이 음성으로 변환된 책을 듣거나, 점자로 변환시켜 주는 기계를 통해 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저작권법상 ‘공표된 저작물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하여 점자로 복제·배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 그냥 만들면 되지만 저자나 출판사에게 이 책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리고 또 기부를 통해 동역하는 문화를 기독교계에 만들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 협약을 맺고 도서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업무협약을 한 출판사가 30개가 넘고 최근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개역개정 관주성경전서 원고도 기부받았다.

2022년 부산에 흰여울교회를 개척하여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신앙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는 정민교 목사. 교회사역만 해도 바쁠 텐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도서관을 세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런데 누군가의 꿈을 세워주는 일에 헌신하는 이의 처음에는 사실 자신의 꿈이 무너지는 경험이 먼저였다.

고달픈 삶이 있었다

한 소년이 있었다. 엄마, 아빠, 남동생과 함께 단란히 살아가면 좋았으련만 가족들의 마음은 온통 전쟁 통이었다.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술만 취해 들어오면 온 가족을 때렸다. 멀리서 아버지 걸음소리만 들려와도 몸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는 어느 날 스스로 세상을 등지셨다. 몸이 안 좋아 늘 약하셨던 어머니였지만 그래도 소년에게 있어서는 하늘이었는데.

하지만 변화가 있을까 기대했던 아버지는 영영 좋아지지 않았다. 동생은 방황하고, 소년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졌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하나같이 돌아온 답변은 ‘죽게 내버려두라’는 말뿐이었다. 아버지가 천천히 눈앞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본 소년은 결국 장의사와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염하는 일까지 해야 했다.

어떻게 살아갈까. 아득하기만 한 미래. 꿈을 꿀 수도,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는 인생이었다.

죽으려고 했을 때 만난 하나님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민 친척은 결국 소년과 동생을 학대하기만 했다. 남보다 못한 관계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 동생을 데리고 바다로 갔다. 그런데 동생 손을 붙들고 물에 들어갔을 때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초등학교 때 교회를 다녔지만 늘 자신의 기도에는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여겼던 하나님이 그를 찾아왔다. 빛이 비치면서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아들, 민교야.’

잘못 들었다 여기고 앞만 보고 계속 들어가는데, 또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하는 아들, 민교야. 왜 죽으려고 하니?’

그때 따졌다. 하나님은 내가 그렇게 기도하며 부탁했는데, 아무런 말도 없고 기도도 들어주지 않지 않았냐고. 그러자 또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민교야. 죽지 말아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힘들고 아플 때 함께했었다. 나도 같이 울고 아파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후 빛은 사라지고 소년은 동생과 물 밖으로 나왔다.

“바로 믿음이 생기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방황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또 부르시더군요. 꿈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리고 부탁하셨어요. ‘너 같이 힘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 나의 사랑을 전해 주면 안 되겠니?’라고요.”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고, 사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팠던 자신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꿈꾸도록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정민교 목사는 초등학생 시절 담임목사와 전도사가 모두 중도 시각장애인인 교회에서 첫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차별 없는 시선으로 시각장애인들을 바라볼 수 있었고, 가깝게 느꼈던 것. 중도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만난 것도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늘 힘들었던 삶 가운데 아내는 ‘넝쿨째 들어온 복’이었고, 시각장애인 사역을 함께하는데 있어 지금도 가장 힘이 되어주는 조력자이다.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민교 목사는 말한다. 사실 시각장애인 사역을 특수사역이라고 분리하는 것이 결국 ‘벽’을 더 만드는 일이라고. 특수사역이 아니라 ‘함께하는 공동체’로 가야 한다고.

“그 공동체 안에 남녀노소 장애인 비장애인이 다 있는 거죠. 저희 교회도 시각장애인교회가 아니에요. 그냥 교회인데 모두 모여 있는 거죠. 넓은 의미에서 한국교회도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최근 저희 도서관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통독 성경읽기표를 만들어줄 수 있냐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알고 계셨나요? 그분들에게는 그 표가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부랴부랴 만들어 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이후에 정말 많은 분들이 들어오셨어요. 우리가 서로 소통하며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도서관이 ‘기독교’라는 정체성 안에 느슨하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는 것.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정 목사는 말했다.

“저희는 국가 지원을 안 받는 도서관입니다. 만약 받게 되면 공정성 때문에 이단이나 사이비 도서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100% 후원으로만 운영됩니다. 그런데 계속 책을 도서관에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한 권의 데이지 도서 제작하는데 평균 10만원이 들어갑니다. 한 사람이 매월 1만 원씩 후원하면 1년에 책 한 권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해외선교지를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도 기독교도서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시각장애인 목회자들을 위한 목회 세미나를 전국에서 개최하며,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북콘서트나 독서모임을 통해 직접 만나는 만남의 장을 만들 것입니다. 책에는 장애가 없으니까요.”

한편 AL미니스트리는 <우리 교회에 시각장애인 성도가 온다면?> 교회용 시각장애인 안내 매뉴얼 발간 및 보급, 코로나 때 시각장애인 어린이에게 이야기성경 보급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AL-소리도서관 사역에 동참할 출판사와 단체, 교회 및 개인 후원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 완성된 전자도서를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활용하나?

점자로 읽는 시각장애인들은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하여 손끝으로 읽으며 점자가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 핸드폰을 이용하여 음성으로 듣는다.

후원계좌 : SC제일은행 507-20-505419(사랑찬선교회 정민교)

홈페이지 : https://alsori.org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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