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만담진담


영국의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최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천국과 내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해 지어낸 이야기”라며 또다시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찬반 논리와 그 함의를 다양한 전문가에게 들어본다.

과학은 경험과 논리의 학문이다. 따라서 논리적 모순이 있고 경험상 검증이 되지 않으면 그걸 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죽은 다음의 세계는 그런 까닭에 기본적으로 과학의 분석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살아 돌아와 이를 과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경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이 사후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이미 과학의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과학은 또한 경험의 세계가 달라지거나 그 경험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면 판단과 결론도 달라진다. 이른바 패러다임의 변화다. 그 변화 이전의 과학과 그 이후의 과학은 같은 과학이라는 영역에 속한다 해도 그 인식의 방법과 내용은 같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과학이 풀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험과 논리의 세계가 변동하면서 패러다임이 바뀌면 알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과학이 앞으로 어떤 놀라운 이해력과 검증력이 생길지는 모르나 그걸 기대할 수 있다면, 그때 사후세계의 존재가 누구에게나 자명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걸 부인한다면 그건 과학의 역사에 무지한 것 아니겠는가? 인류의 과학사는 과거의 과학이 그다음 세대의 과학에 의해 부정당하는 사태를 무수히 겪지 않았던가?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바로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것이 진실 아닌가? 그렇다면 사후세계에 대한 과학의 예단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예감할 수 있는 차원이 단 하나 있다. 그건 종교적 영성이다. 보통의 경우 발휘되지 못하는 힘이나 예지력 또는 감각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생겨나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거나 보기도 한다. 과학이 대답해주지 못하는 지점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영적 차원의 능력은 3차원을 넘어서는 영역과 소통하는 힘이고, 그 힘은 삶과 죽음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기능을 한다.

과학은 인간의 영성에 잠재되어 있거나 나타난 현상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삶에 가져다주는 자산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종교인들의 자세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은 과학적 이성으로 납득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영적 차원의 깨침이 가져다주는 평화와 감사다. 이게 없는 존재는 삶 자체가 너무 고독하고 힘겨울 것이다. 사후세계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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