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어떻게 확장해 볼까

 

특집 : 앞으로, 앞으로

정(精)적인 사람으로 살다가

혜경 씨는 자라면서 여러 번 넘어졌다. 무릎도 발도 심하게 다치면서.

눈이 나빴던 건데 아이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바깥에서 놀기보다 집안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공기, 인형 놀이, 학교 놀이, 동화 읽기.

좀 더 크면서도 책과 피아노 등 앉아서 하는 취미에 머물러 움직임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 안경을 써서 시야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동안 그렇게 살아온 생활 모습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중년을 맞은 어느 날, ‘몸 사용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정신세계만큼 육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굳어지게 할 수는 없어!’ 긴 세월 방치한 몸, 자기 스타일에 맞춰 움직일 종목을 찾아야 했다.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오호, ‘발레 스트레칭’ 클래스가 있었다. 이런 성인이 가능할지.

몸에 붙는 얇은 티를 입고 랩스커트로 허리를 두른 모습이 사방 거울에 비쳤다. 수직이 되게 앉아 팔다리를 풀며 지금껏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감정이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을 ‘성(聖)스러운 빛의 시간’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삶에서 희망을 잃은 자라고 했던가(헨리 데이비드 소로). 혜경 씨는 그날부터 아침마다 스트레칭 시간을 가지며 말씀 묵상으로 얻는 영의 양식과 함께 육체에서 주는 양분을 풍성히 맛보았다. 그 풍성함은 삶에 이어지는 효과를 새록새록 느껴가는 것이었다.

신체 활동이 주는 사고의 확장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가벼운 신체적 각성이 더 높은 수준의 정신적 각성으로 이어진다.”며 몸 움직임에 의해 사고가 확장된다고 했다. 그래서 일하다 갖는 휴식 시간을 ‘움직이기 위한’ 시간으로 만들라고 강조한다. 빠른 걸음은 속도에 관심이 쏠리므로 멈춘 이후 몇 시간 동안 생각하는 능력을 향상하게 하고, 중간 정도 이하의 걸음은 걷는 동안 인지적 유연성을 높여 얽힌 문제를 풀게 한다고 한다.

산만함을 줄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떠오르게 하는 몸의 움직임은, 집중할 일을 하기 전 적절하게 실행하여 일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팁이 된다.

공부할 때도 물건을 만지작거리거나 낙서하는 중에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창의적인 사고로 연결한다는 실험 결과도 나와 있었다(애니 머피 폴의 ‘익스텐드 마인드’). 움직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있을 때는 그리로 에너지가 소모되기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잘 생각한다는 과거의 믿음을 지금 시대는 스탠딩 데스크(서서 일하는 탁자)로 바꾼 것이다. 뇌를 사용하는 신경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 ‘신경 외적 자원’을 활용할 때 사고가 유연하게 확장됨을 보여준다.

생각했던 것 해보기

브론테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웨이스티드’(wasted)는, 시대에 앞서 사회를 본 시선으로 소설을 쓰며 혹독한 평가 속에서도 열정과 노력을 이어가는 모습을 비춰준다.

브론테 자매들은 단어를 모아 책을 만드는 과정이 헛되게(웨이스티드) 보일 수 있지만 ‘성공하지 않아도 헛된 것은 아니라’고 격려하며, 생각했던 것을 해보는 일은 내 안에 수집된 풍성한 정보를 풀어내는 표현의 통로가 된다고 했다.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의 앤 브론테와 미완의 예술가 브랜웰 브론테가 가난 가운데서도 ‘창작을 시도하는 즐거움’을 서로 나누는 모습이 귀하게 비추어진다.

여기에 몰리에르의 희곡 <서민 귀족>에 나오는 주인공의 말을 더해본다. 그는 귀족이 되기 위해 산문과 운문의 차이를 배우다가 “40년 넘게 산문을 말하고 살아오면서 그것을 몰랐다니.”라며 ‘문장을 구분하게 됨’에 기뻐함을 본다.

이같이 생각한 것을 해보고 실행할 때, 우리는 관련이 없는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애니 머피 폴은 ‘신경 외적 자원’이라 하며, 신체에 의해 사고가 유연해지는 것, 사는 공간에서 발견하는 귀한 조각들,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 가운데 마음이 확장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중간쯤에서 공부하며 충분한 자유 시간을 누리고 넓은 분야를 배우는 게 삶에 유리하다’고 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꼭 맞는다. 학창 시절 점수에 연연하기보다 삶을 통틀어 볼 때 풍성하게 자원을 품는 사람이 낫다는 뜻이다.

좋은 판단으로 생각을 확장하려면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불쾌한 감각의 경험을 잘 구별해 조절해간다고 한다. 몸의 신호를 감지하는 우수한 능력을 지니게 되면 신체를 관리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꾹 참고 의지로 견디기보다 자신의 감정 상태에 이름을 붙이며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을 적당한 단어로 표현해 그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 방식을 따라 해볼 만하다.

해야 할 일에 중압감을 느낄 때도 과제를 소리 내어 말해보면 겁나는 마음에서 이완된다고 한다. ‘~시작하기 무섭다는 것은, 자신에게 기대가 높아서 실패하지 않으려 시도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이연 작가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려면 백지에 아무 선이나 그어 보라”며 내면의 외로움, 권태, 자기 연민과 열등감을 담아 드러낼 때 작품이 되는 거라고.

물론 이렇게 마음을 확장해 표현하려면 혼자의 시간을 쌓아 이야기로 엮어야 한다. 조용한 시간, 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며 자원을 쌓아가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 내적인 단단함에서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힘이 나오는 것이고.

마주치는 이에게 친절하기

그러면 마음의 확장을 위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친구 중에 동창생 비중이 높거나 어릴 적 친구를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부 집단에 대한 유대감이 강한 사람들로 한국인 대다수가 여기 속한다고 한다.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에 대해서는 신뢰와 유대감이 강하나, 이웃이나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라고 사회학자인 임채윤 교수는 말한다. 친구 관계가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친구로 제한될수록, 사회적 연대감의 반경이 좁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에게 임 교수는 제안한다. 아파트 문을 두드려 사람을 사귀는 일은 어렵지만, 엘리베이터나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눈인사를 건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마음을 넓히는 길이라고. 이런 ‘명랑함’은 삶의 문제에 짓눌리지 않고 넓게 바라보는 힘을 준다는 거다. 자신에게 주어진 날을 즐겁게 감당하려는 의지는, 명랑함을 연습하는 중에 세워지기에 작은 실천인 친절한 인사가 마음을 확장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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