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 다녀온 김은구 사진작가 이야기

 

산티아고를 걷게 된 이유

김은구 사진작가(사진). 취미와 봉사로 사진 촬영을 하던 그가 전업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외국 이주 생활. 2014년에 아내와 함께 태국에 나가서 살게 되면서 사진작가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아내와 함께 외국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파견근무로 한국에서의 삶을 대부분 정리했습니다. 집이나 차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하던 일도요.”

각박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에서의 삶을 떠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자연을 보며 살아가는 이민생활이라니. 게다가 새로운 직업까지. 많은 현대인들이 꿈꾸는 삶이었다. 그런데 부부가 함께 타지에서 일하며, 삶을 꾸려갈 즈음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왔다.

“아내가 힘들어했어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고된 일이기도 하고, 업무적 스트레스와 더불어 회사에서 유독 힘들게 하는 상사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더 이상 일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될 정도로요. 정서적으로도 불안했기 때문에 태국에서의 삶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부부. 하지만 태국에서의 힘듦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계획을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났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김 작가의 아내는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때 의사는 처방을 하나 해주었는데, 이것이 김 작가 부부의 삶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햇빛 많이 받으면서 둘이 같이 산책을 하라고 했어요. 그때 떠오른 것이 산티아고 순례였습니다. 한 달간 걷게 되면 그동안 햇빛은 당연히 많이 받을 것이고, 둘이 함께 오래 걸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가장 긴 코스는 장장 800km가 넘는 거리를 한 달 넘게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 김 작가의 아내는 처음에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망설였지만, 김 작가의 설득에 결국 여행을 결정했고, 30일간의 순례길에 올랐다.

거리의 천사들, 그리고 Mom

김 작가에게 산티아고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거리의 천사들”이라고 답했다. 거리의 천사들이 누구일까?

“30일간의 순례는 만만치 않았어요. 일단 육체적으로 고된 일정이었지요. 오후에 햇살이 따가울 때는 걷기 어렵기 때문에 새벽부터 약 30km를 걸어 다음 알베르게(숙소)까지 도착해야 해요. 한 번은 며칠간 비를 맞으며 걸어서 아내가 몸이 안 좋은 때가 있었는데, 전날 만났던 모녀가 사탕 한 주먹과 쪽지를 남겨 두었죠. 우리는 다시 힘을 내서 걸을 수 있었어요.”

사진 : 거리에서 만난 천사들과 아내. 천사들이 아내 머리맡에 사탕을 주고 갔다. = 김은구 작가

거리에서 만난 천사들은 그저 걷는 여정에 소박한 도움과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를 준 사람들이었다. 김 작가 부부가 이름을 물었더니, 그중 한 사람은 그저 자신을 ‘Mom’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김 작가는 그런 익명의 천사, 아니 엄마와 같은 천사들을 순례길에서 만난 경험이 30일 간 걷는 내내 있었다고 전한다.

“햇빛을 받으며 걷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걷기, 거리의 천사들로부터 따듯함과 친절을 느끼며 걸은 일은 우리 부부의 삶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가장 큰 결실은 아내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거예요.”

김 작가 부부는 산티아고 여행 이후에도 ‘걷기’를 지속하고 있다. 걷다 보면, 나처럼 걷고 있는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되고,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교감하게 된다. 때로는 가벼운 끄덕임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는 시간과 여건이 허락해야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일이기에, 김 작가는 순례를 일상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한국에도 좋은 길이 많고, 사실 ‘어떤 길’을 걷느냐 보다, ‘길에 나섰느냐’가 더 중요하기에 일단 문을 열고 나가서 걷다보면 모든 걸음이 순례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김 작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일단 나가서 걸어보라고. 걷는 길 위에 천사가 있다고. 때로는 내가 그 천사가 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래, 문을 열고 나가보자. 산티아고는 우리의 발걸음 속에 있으니.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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