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선생님, 우리 선생님

4학년에 올라간 날

선생님은 칠판에 이름을 쓰더니 크게 불러보라고 했다. ‘김*자 선생님~’

이어 새 교실에 필요한 비품이라고 ‘칠판 지우개, 빗자루, 커튼, 걸레, 쓰레받기, 총채, 꽃 화분과 빵 바구니’ 등을 쭉 적고는, 사 올 사람 손을 들라며 하나씩 채워갔다. 누군가 바로 나서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기에 아이들은 적당한 항목에 손을 들고 있었다. 맞다. 자발적으로.

열한 살, 4학년은 기억이 분명하며 사리 판단이 서기 시작하는 때다. 아이들은 새 담임선생님이 차갑고 무서운 분인 것을 느끼고 있었다.

교실 비품을 사 오겠다고 손든 아이들이 엄마한테 혼나가며 가져오는 중에, 혜경이는 자기가 사 오겠다고 한 빵 바구니 얘기를 엄마한테 하지 못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 반 아이들 앞에서 빵 바구니 독촉을 받은 혜경이는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가방을 들고 계속 걸어 버스 종점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왔다.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처음으로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 며 선생님과 맞닥뜨리기로 마음먹었다.

이튿날 첫 시간 교단으로 걸어 나가 “엄마가 돈이 없어서 못 사준대요.”하자 선생님은 바로 엄마를 불렀다.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엄마는 싸늘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말이 없었고, 그 저녁 아버지에게 ‘애가 변했다’고 말한 거 같았다. 그토록 딸 편이던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착했던 애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몰아갔다.

반성적이 안 좋아

그 후 선생님은 화가 나서 들어오는 날이면 ‘반성적이 안 좋아’라고 하면서 앞자리서부터 막대기로 손바닥을 때리며 전체를 돌았다. 시계를 풀고 왼손으로 힘을 다해 때리던 벌겋게 단 얼굴은 정말 화가 많이 난 모습이었다. 두 손이 나란히 펴지지 않은 아이는 더 맞아야 했고, 반사적으로 피하기라도 한 아이는 어깨까지 마구 맞았다.

하루는 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지 사회 관련 참고서를 사라고 했다. 어렵던 시절, 참고서를 사줄 가정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달 시험 후 선생님은 더 화가 났다.

다 복도로 나가라 하더니 1등부터 차례로 들어와 앉게 했다. 그리고는 지난달보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는 혹독한 매를 맞아야 했다. 혜경이는 한두 개 더 틀렸다고 그 매를 맞았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은 혜경이가 언니 오빠들의 일본제 문구류를 가져가는 날이면 여기저기 써보며 혜경이 그림을 뒤에 전시했다. 비구상 작품이라 별로 그린 것도 없었는데.

4학년 여자애들을 그렇게 다루던 선생님은 왜 그랬을까.

혈기에 부르르 떨며 아이들을 아프게 하던 선생님은 ‘반성적’이 그토록 대단히 중요했었나? 그렇게 화난 얼굴과 이름이 지금껏 기억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 구조의 차원에서 볼 때, ‘존엄’을 놓치게 된다고 한 사회학자 고프먼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 한 명씩을 인격적으로 보지 않고 학급 성적을 내는 구성원으로 보던 그 선생님 앞에서, 어떻게 한갓 부속품처럼 되지 않았는지.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

한편 2021년 오스카상 장편 다큐멘터리 부분을 수상한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며 인격적인 만남이 일으킨 놀라운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이 영화에서 1년간의 관찰 기록을 보면서, 문어의 ‘생존을 위한 창의적 생태’에 초점을 맞추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시각은, 문어를 대하는 주인공 크레이그의 자세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자연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이 귀하게 비쳐진다. 조용히 멀리서 기다리며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다 보니 문어가 기적 같이 다가오고, 그 소통으로 위로를 받고 삶을 배우게 되었던 거다. 제목을 ‘문어 선생님’이라 붙일 만큼.

시작은 크레이그가 영화감독으로서 일에 지쳐 주저앉았을 때,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며 어릴 적 자신이 놀던 바다를 기억해 그리 향하는 것부터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근처 대서양 다시마 숲, 그는 거기서 자유를 갈망하며 스쿠버다이버의 옷을 벗고 파도와 추위를 마주한다.

그러다 발견한 이상한 조개 소라 덩어리,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문어를 보게 된다. 그 희귀한 덩이는 문어의 변장술이었고, 그러다 심심해지면 문어는 작은 물고기들과 장난치며 부유물 속에서 놀았는데, 그는 그 문어를 ‘her’라고 부르며 친밀하게 느낀다.

위험을 피해 조개와 소라를 몸에 덕지덕지 붙였던 문어의 모습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살아온 태도를 닮아서 더 애착이 갔을까? 생존경쟁에 지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지겨웠던 크레이그는, 그것을 피해 찾아온 바다에서 생명체가 생존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상어의 공격을 받아 다리가 잘린 문어는, 한동안 자신의 동굴 속에서만 지내며 나오지 않았다. 새 살이 돋아나기까지 기다리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러나 치유된 후엔 상어가 공격하려 할 때 상어의 등에 달라붙는 창의적 생존력을 보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크레이그와 깊은 유대가 생긴 문어가 아이처럼 가슴에 안기던 날, 그 감격은 말을 잇지 못하게 한다.

인격적 관심이 주는 성장

이렇게 개별적 인격의 만남이 가져오는 성장은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김*자 선생님의 목표에 매인 닫힌 사고는,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보지 않아 4학년 12반 아이들에게 고난의 해를 보내게 했다. 그러나 혜경이는 4학년에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른이 다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은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화는 스스로 다스려야 하고, 어린아이나 약한 사람에게 풀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한 명씩 인격적으로 대해야 함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문학 작품들도 이런 갈등 속에서 어떻게 이겨나가는가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고, 낯선 것이 내 안의 사고와 충돌을 일으킬 때, 힘들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한걸음씩 걸어가야 하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예수께서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태복음 18장 10절) 함도 알게 되었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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