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선생님, 우리 선생님

 

왜 그럴까요, ‘선생님’이라는 호칭 속에는 존경의 마음이 담깁니다. 그렇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선생님이라 부르는 분 중에 송진규 선생님이 계십니다.

대학 시절을 제외하곤 태어난 강원도에서 줄곧 사신 분입니다. 평생 한 고등학교를 떠나지 않고 국어를 가르쳤고, 그 학교에서 교장으로 은퇴를 하셨지요. 은퇴 뒤에는 고향에서 이장 일도 보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고요.

지난해 가을 출판기념회가 있어 원주를 다녀왔습니다. 세상에 쏟아지는 책들은 헤아리기가 어려울 만큼 수가 많지요. 모든 책은 고유합니다. 세상의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선생님이 내신 책은 더욱 그랬습니다. 교직에서 물러난 지 12년, 강산도 변했을 시간이 지났는데 선생님의 가르침을 고마워하는 제자들이 그동안 선생님이 쓴 글과 선생님이 찍은 사진을 모아 책을 내고 그것을 기념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니, 어디 흔한 일일까 싶었습니다.

<바람에 밀리는 구름 밟고 가는 달같이>는 두 손으로 공들여 들어야 할 만큼 무거웠습니다. 책의 두께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걸어오신 우직한 걸음과, 무엇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았던 선생님의 시선과 생각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잡지 <디새집>에 2년간 연재했던 글에 눈이 갔습니다. 우리의 옛 소리를 채록한 내용들은 누군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 소리와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숨결이었습니다.

책에는 선생님이 찍은 사진도 제법 담겨 있습니다. 선생님은 50mm 렌즈를 고집하여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50mm가 사람 눈에 가장 가까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런 선택 속에도 과장이나 꾸밈을 경계하시는 선생님의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심으로 책을 만들고 그 기쁨을 나누는 자리, 독일어 ‘쉔켄’(schenken)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선물하다’라는 뜻으로 ‘누군가에게 마실 물을 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지식 이상의 물을 전한 선생님께 이번엔 제자들이 선물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라는 책에 실린 한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국립대 총장 격인 대학자 퇴계와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청년 고봉 사이에 오간 편지를 묶은 책인데, 어느 날 고봉이 존경하는 스승에게 편지를 쓴 뒤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삼가 백 번 절하고 올립니다.’ 선생님께 드리는 제자들의 마음이 고봉과 다를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겨울철 난롯가에 둘러앉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 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품의 깊이나 넓이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날의 주인공이면서도 선생님의 자리는 맨 뒤에 놓인 테이블, 선생님의 옆자리에 앉았던 나는 내내 궁금했던 한 가지를 선생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요?”

선생님의 대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제가 만만해 보이는가 봐요.” 무엇 하나 허술함 없이 한 길을 걸어오신 선생님, 그러면서도 제자들에게는 얼마든지 허술함으로 가슴을 내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허술해 보이는 품에 들어 제자들은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늘어놓으며 세상살이에 지쳤던 마음을 내려놓았던 것이었고요. 허술함이 자신들을 향한 선생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자들은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지요. 허술함으로 제자들과 같은 자리에 서신 선생님의 품에 저도 마음을 기댄 시간이었습니다.

한희철

강원도의 작은 마을 단강에서 15년간 목회했다. <크리스챤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작가로 등단했고, 단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보에 실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에서 이민 목회를 했으며, 현재는 정릉감리교회를 섬기며 여전히 따뜻한 품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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