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듣기

3월. 입시든 취업이든 정한 목표에 도착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현실에서 ‘그래, 한 번 더 해 보자’라고 마음먹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려운 일은 집에 오는 길, 버스에서 만난 학과점퍼를 입은 친구에게 “잘 지내? 학교 갔다 오는구나?”라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 또는 긴장한 탓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동창회에 나온 친구에게 “사원증 뭐냐~ 이름표냐”라며 학생 때처럼 호탕하게 놀릴 수 있는 진짜 용기를 내는 일이다.

본인들만 겪는 일이 아니다. 그 부모, 조부모의 이야기가 되고, 형제자매의 이야기가 된다. 특히 부모님들은 친척 모임에 가도, 친구 모임에 가도 결국 자녀이야기로 귀결된다. 누구네 아들은 어느 대학에 합격했고, 누구네 딸은 어느 회사에 취업을 했고, 누구네 아들은 몇 월에 결혼을 한단다. 물론 겉으로는 “그놈의 자식! 공부하랄 때 안 하더니 그럴 줄 알았어. 지 인생 자기가 사는 거지! 난 신경 안 써~” 라며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은 뭔지 모르게 씁쓸하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그 사람이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보내면,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질까봐, 내가 울면 지금까지 지켜온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까봐 못 우는 거다. 고집스레 걸어온 이 길이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나를 믿어준 가족들과 지인들이 걱정하고 실망하게 될까봐.

심지어 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못 우는 거다. 웃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꾸 웃으면 세상이 만만히 볼까봐, 속없다고 할까봐 웃지 않다가 웃는 걸 잊을 수도 있다. 웃고 싶다고 마냥 웃을 수 없고, 울고 싶다고 마냥 울 수도 없었기에 안 웃고, 안 울다 보니 잊어버린 것이다.

마음의 소리를 듣자

물론 웃지 않을 수 있고, 울지 않을 수 있다. 강요할 수 없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울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건지는 알아야 한다. 울지 않고 견디는 또는 웃지 않고 버티는 내 감정 뒤에 ‘숨은 내 진짜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생명문화라이프호프에서 만든 생명보듬이 자해예방교육에 따르면 사람은 감정의 표현과 마음의 소리 사이 거리가 멀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그 스트레스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때 자해욕구가 급격히 상승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섭섭한 마음에 큰 소리로 화를 냈다면 정작 표현하고 싶은 건 ‘보이는 화’가 아니라 ‘내가 섭섭하다’라는 마음의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을 안 하거나 버럭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말인 “이 상황이 힘드니 변화시켜 줄 수 있어?”라고 물어야 한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거나 반대로 갑자기 아무 말도 안하고 묵언수행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내 마음의 소리를 알아차릴 수는 없다. 내가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의문문으로 바꿔서 상대에게 요청하면 상대방도 갑자기 감정적인 폭탄을 맞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줬는데!”라고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싶을 때, 솔직한 내 마음의 소리인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 내 마음이 너무 서운해. 그렇게 하지 말아줘’임을 들어 표현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아, 그렇게 느끼는지 몰랐어. 미안해”로 반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감정은 뇌에서 나온다. 순간적이고 즉흥적이며 사고를 거치지 않고 표출된다. 그러니 욱하고 표현된 내 감정 뒤에 숨은, 내 마음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듣도록’ 노력하자.

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마음의 소리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력을 키워야 한다. 요즘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쓰는 감정표현인 “짜증나”는 속상하다는 걸까? 화가 난다는 걸까? 마음이 아프다는 걸까? 귀찮다는 걸까? 역으로 물어봐도 대답을 잘 못한다. 그 마음까지 표현할 어휘력이 내 안에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잘 표현할 단어와 문장을 어떻게 익혀야 할지.

잘 들으며 생각할 과제다.

김주선

사)생명문화라이프호프 사무국장이며, 사람을돋우는마을사람들 대표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해답을 만들기 위해 서울~부산도 걸어내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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