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작가 전병삼, 우크라이나 사람들 위로 위해 작품 ‘REDREAM’

특집 : 오, 늘 크리스마스

 

붉은 꽃밭을 만나다

지난 달 10일 서울 슈페리어갤러리에서 열린 ‘문화 예술로 전달하는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위한 연합 포럼’. 갤러리에 들어서자 공간 한편이 온통 붉은 꽃밭이다. 노랑과 파랑 우크라이나 국기 색을 상징하는 종이상자 속에 겹겹이 붉은 카드가 들어있어 전체적으로 입체적인 운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작품은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설치미술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전병삼 작가(사진)는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밝혔다. 작품 제목은 ‘리드림(REDREAM)’. 지금은 폐허가 된 조국, 지금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지만 다시금 소망을 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누구의 요청도 없이 8개월 동안 자발적으로 만든 대형 설치미술작품이다.

제 모습과 겹쳐 보였어요

“올해 초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 쏟아진 포격으로 부상당한 18개월 딸을 품에 안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가는 아버지였습니다. 붉은 피에 물든 아이를 안은 아버지의 모습과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5년 전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을 때 제 모습과.”

5년 전 이야기지만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지는 전 작가. 태어나면서 심장수술을 받아야 했던 아이는 짧은 시간을 함께하고는 떠나갔다.

“5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요. 제 인생 가치관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아내와 결심했어요. ‘진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주위 사람에게 감사 표현 하고 살자’고. 그렇게 작업에만 전념했는데, 그 시간 동안 가족이 치유되고 제 마음도 치유되는 것을 미술을 통해 경험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내가 매일 하는 일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을 보게 되었지요.”

전병삼 작가는 한국 설치미술계에서는 유명한 작가이다. 25년간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활용한 대형 미술작품으로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대한민국 과학축전 개막 연출 총감독, 청주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 총감독, 미디어아트 국제전시 This Ability 총감독,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내가 뭐라도 해야겠구나

그 아픔의 시간을 견뎌냈던 그였기에 화면 속 아버지는, 남이 아니었다.

‘아, 저 사람이 아프겠구나, 내가 뭐라도 도와야겠다.’

“준비할 때 스스로에게 자격이 있나를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제게 ‘지금은 자격을 논할 때가 아니라 무엇이든 해야 할 때’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수입까지 다 쏟아 부었어요.”

작업을 시작했다. 잘 알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를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우크라이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

“양귀비꽃이 봄에 피는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 꽃을 참 사랑한다고 해요. 우리나라 개나리 진달래처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꽃이라고 하더군요.”

우크라이나의 봄은 빼앗겼지만, 피난 가느라 흐드러지게 핀 붉은 꽃도 보지 못했을 수많은 피난민들에게 그 꽃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붉은 양귀비 꽃 사진에 ‘MY HEART IS ALWAYS WITH YOU(나의 마음이 항상 당신과 함께 합니다)’ 문구를 집어넣어 인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가로 10cm, 세로 4cm의 종이를 한 장 한 장을 접어서 총 108장의 카드를 한 상자 안에 넣었지요. 세어보니 58만 3308번의 기도가 되겠네요. 그렇게 한 개 한 개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 총 5401점을 만들었습니다.”

‘5401’. 무슨 의미의 숫자일까. 지난 8월 8일 유엔이 발표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 수를 뜻한다. 한 개의 작품이 5401명 중 한 명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으로, 각 작품은 개별적으로도 작품이며, 한 개의 대형 설치미술작품으로도 존재한다.

“각 상자에는 모두 다른 숫자가 적혀 있어요. 1~5401번까지 일련번호를 써놓았습니다. 사망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제작했습니다.”

혼자서 시작했던 작품은 알음알음 알게 된 이들이 카드를 접겠다고, 박스를 만들겠다고, 제작비나 운송비를 돕겠다고 더해지면서 이제 ‘우리’의 작품이 되었다.

인쇄한 사진 한 장을 절반으로 접어 옆면에 보이는 이미지를 이용해 동일한 사진으로 쌓으면 이미지의 축적을 통해 원래 풍경은 소멸되지만 또 다른 풍경이 생겨나게 되는 것.

“지금 이 순간은 사라지지만 사라졌을 때, 더 그립고, 소중한 것들, 가치를 깨닫게 되지요. 익숙한 대상이었지만 그것을 낯설고 사라지게 해서 그 대상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폴란드에서 전시 예정

이번 갤러리 시연을 마지막으로 ‘리드림’은 한국을 떠났다. 11월 말이나 12월 초 폴란드 바르샤바 인근 ‘글로벌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전시를 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있는 난민캠프로, 2.5톤에 달하는 작품은 피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중에 종전이 되면 민간인 사망자 5401명의 가족 품에 안기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실 여전히 후원이 필요하지만 전 작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작품이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이후에 미술계에서 그들을 위로하는 작품들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받은 이들을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방법 중 하나가 문화입니다. 환경 재건 등 여러 가지 물질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작가로서 ‘마음’을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작가로서 조금 더 큰 보폭으로 인류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깊이 쓰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전병삼 작가는 그렇게, 늘, 성실히 걸을 계획이다. 그 길 위에 만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면서.

* 리드림 프로젝트 https://bsjeon.com/redream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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