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끝자락의 고기리가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 교회 근처에 문화공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갈라치면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했고, 차 한잔을 마시려 해도 한참을 나갔다 돌아와야 했다. 그런 고기리가 지금은 인근 지역 주민들도 차를 타고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어찌된 일일까?

잉여가 아닌 전부를 준 그 분처럼…

고기교회(안홍택 목사) 안에는 ‘그냥가게’가 있다. 이름처럼 누구든 와서 그냥 커피 한잔 하고, 그냥 가는 그런 가게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무료다. 그냥 가서 “커피 한잔 주세요”하면 자원봉사자가 친절히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준다. 입소문이 나 인근 주민들도 단골이 꽤 된다. 카페에서 값을 치르는 건 직접 로스팅한 원두뿐이다. 커피를 마시러 들른 주민들이 사가는 원두값의 수익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쓰인다.
처음 가게를 오픈하고 무료로 커피를 제공하는 것에 교인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안 목사는 ‘모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돈으로 돌아가지 않는 곳이 한 군데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교인들을 설득했다. 교회만큼은 수익을 내려하지 말자는 게 그의 뜻이었다.

안 목사는 열두광주리가 남을 것이라 했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이고, 신뢰를 나눈다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나누는 일이다.
“자본의 가치에 따르면 감동이 있을 수 없어요. 가치를 철저하게 돈으로 주고 받는 자본의 가치에 교회마저 편승해선 안됩니다. 샘솟는 감동의 가치가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잉여를 내놓지 않고, 전부를 내어주셨습니다. 잉여가 아닌 전부였기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누구든 가게에 와서 커피 한잔 그냥 마실 수 있는, 쉬어갈 수 있는 그 작은 공간과 커피 한잔 기꺼이 대접하는 배려에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 같아요.”

▲ 그냥가게에서 대접받은 아이스 커피. 더운 오후의 갈증과 피로가 싹 날아가는 듯 하다.

▲그냥가게에서 마시는 커피는 무료다. 입소문이 나 단골손님도 꽤 된다.

추수감사주일=마을잔치

고기교회의 추수감사주일은 그야말로 마을잔치다. 작년 10월 넷째 주는 고기리의 잔칫날이었다. 교회 앞마당에 농사심은 갖은 채소를 추수해 함께 먹고, 떡메도 치고, 천연 염색으로 예쁘게 천도 물들였다. 텃밭에서 쓰는 경운기에는 교회에서 만든 바이오디젤(콩기름)을 넣고 시연도 했다. 고기교회의 잔치에는 밤토실 회원들, 생태학교 ‘처음자리’의 학부모와 학생들, 이 밖의 인근 주민들도 함께했다.
안 목사는 매년 교회앞마당에서 열리는 ‘작은음악회’를 떠올렸다. 한번은 비가 와서 행사를 취소해야 하나 걱정하던 찰나, 한 분이 천막을 가져와 야외무대주변을 치더라는 것이다. 어떤 분이신지 여쭈었더니 인근 주민이라고 했다. 아무리 교회여도 함께 잔치하는 날인데, 비가 온다고 취소할 수 없지않느냐는 것이었다. 안 목사는 그 때 오히려 그 분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생태학교'처음자리'학생들. 오늘 수업은 모내기다.

목공방, 생태학교 등 열린 생태공간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속도를 거슬러 천천히 가려는 이들이 있다. 더 싸게, 그리고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의 시간과 정성, 그리고 재정을 들여서 애쓰는 이들.
고기교회의 목공방에 모인 사람들이 그랬다.
‘아래 목공방’은 나무와 친해지려 하는 이들에게 모두 열려있다. 그도 그럴것이 교회 출석 유무를 떠나 나무와 친해지려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꾸려가는 모임이기에 교회에서 운영한다고 말하기가 다소 민망한 감이 없지 않다.
2003년 이래 지금까지 매 학기 신청자가 끊이지 않는 생태학교 ‘처음자리’ 역시, 용인 뿐 아니라 분당에서 학부모들이 찾아와 수업참관을 신청할 정도다. 대부분의 생태공원이 인위적인데 반해 고기교회의 터는 자연 그대로의 손이 가지 않은 원시적인 상태이다. 교회의 계단식 논 일곱 배미에서 짓던 농사를 그치니 자연스레 작은 습지가 되고, 솔밭, 연못도 있는 교회터는 작은 들꽃과 곤충, 새들이 함께 살아가는 자리였다. 이 좋은 환경을 가지고 생태학교를 운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다.
창조의 숨결을 느껴보고자 고기리(옛터)라는 지역 이름을 따라 처음자리라는 이름도 짓고 아이들을 위한 자연생태교실을 열었다. 우면산자연학교 교사이자 숲해설가인 이인성 권사가 10년 가까이 맡고 있는 ‘처음자리’는 일년 중 봄과 가을, 두 번 열린다.
교회 인근의 초등학교에도 도서관이 없어 마을 주민들은 수지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빌려 봐야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도서관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에 마을 사람들은 움직였고, 안 목사는 사택을 도서관으로 활용하도록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렇게 개관한 것이 지금의 ‘밤토실어린이도서관’이다. 밤토실은 어린이도서관이자 고기리 마을의 동네 사랑방이다. 어린이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를 데려온 학부모, 책을 보러 온 주민 등 밤토실은 마을의 문화 공간이자, 마을 사람들이 교류하는 공간이다.
교회는 더 이상 교회안의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한 지역 교회의 열린 마음은 온 마을이 함께 누리고, 즐기는 유쾌하고 생명력 넘치는 시공간이 되었다.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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