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교회개척 훈련 때 처음 만난 뿌 전도사는 숫기도 없어 보이고,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골에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자라 위축되어 그런가 싶었는데,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을 무서워하는 트라우마가 있었고, 예수를 믿고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감정의 밑바닥을 건드리면 또다시 그 공포감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뿌 전도사는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모든 면에서 뒤처졌다고 알려진 이싼 지방 출신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국인 노동자 모집에 지원했습니다.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기술 훈련도 받아야 하고, 정부의 허가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 가려고 애쓰는 이유는 몇 배나 많은 돈을 벌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꿈

그녀는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 땅을 밟았지만 듣던 대로 외국인 노동자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배치된 공장은 큰 기계로 금속제품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가녀린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돈을 벌어 고향에 간다는 소망 하나 붙잡고 그 어려움을 견뎌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중한 기계에 한쪽 손이 짓이겨지며 잘려 나가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 고통은 말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회사 주인은 그녀를 치료하고 보상하기 보다는 더 이상 일을 시킬 수 없는터라 공장에서 내쫓아버렸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처 입은 몸, 잃어버린 꿈, 아무것도 남지 않은 미래. 그런 그녀를 향해 도움의 손을 내밀어 준 곳이 있었습니다. 교회였습니다. 인근의 교회에서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치료를 도와주고, 보상을 받도록 나서서 일을 처리해 주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그녀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깊은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상처를 사랑으로

말없고 낯가리는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더욱 내성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자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부러워하던 사람들은 장애가 생겨 돌아온 그녀의 뒤에서 수군덕거렸고, 마치 마을에 재앙이라도 갖고 온 사람인양 말도 섞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는 교회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고, 말씀과 성도들의 기도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도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동안 한국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나는 만날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깊은 눈물의 웅덩이를 퍼내듯 끝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끊어진 손목의 상처가 아물듯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갔습니다. 얼마 전에 찾아갔을 때는 한 마을에서 작은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매 주마다 새 신자들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뿌 전도사는 새해가 되면 이 모임이 가정교회가 되고 마을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도 공부하고 전도훈련도 받고 사역자로 새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박태수

C.C.C. 국제본부 총재실에 있으며, 미전도종족 선교네트워크 All4UPG 대표를 맡고 있다.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땅 끝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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