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과잉시대를 사는 법

 

안 좋은 것일수록

바삭 마른 잔디 사이로 노오란 민들레 비스무리하게 생긴 꽃이 새초롬히 피어 있다. 신기하게도 이 시기에는 잔디보다는 불청객인 잡초들(복수초에게는 미안하지만)이 일찌감치 한 자리씩을 차지한다. 잔디가 움트기 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잔디가 자라나면 무엇이 잔디이고 무엇이 잡초인지 뒤섞여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다.

우리 인생살이도 이와 비슷한 경우에 맞닥뜨리게 된다. 안 좋은 건 좋은 것 보다 먼저 자리 잡기 일쑤다. 안 좋은 것일수록 그 생명력이 강하고 끈질겨서 없애려 하면 할수록 의지와는 상관없이 뿌리를 깊이 내려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쾌락호르몬, 도파민

감정묘사가 탁월하여 몰입감을 주던 모 배우가 있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 상습적인 마약 투약혐의로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뭐가 그리도 아쉬워서 손을 대면 안 될 마약에까지 손을 뻗친 것일까?

마약을 하게 되면 도파민 활성이 증폭되는데, 도파민(Dopamine)이란 뇌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화학물질인 신경전달물질이다. 이것은 쾌감과 활력, 집중력과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어 일명 ‘쾌락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도파민은 즐거움에 대한 신호를 전달해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적당량이 분비되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저하되며 운동능력이 감소될 수 있다. 반대로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정신병,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도파민은 마약을 비롯하여 니코틴, 카페인 같은 중독물질(물질중독)뿐만 아니라 게임, 쇼핑, 스마트폰 및 SNS를 할 때(행위중독)나 성행위 시(성중독)에 분비되는데,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행동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강력한 쾌감을 느끼게 되어 결국 중독에까지 이르게 된다.

쾌락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

쾌락이란, 내성(약물을 반복적으로 계속 사용할 때,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선 점점 더 많은 양의 약물을 필요로 함)이 동반되기에 더욱더 강도 높은 쾌락을 향해 질주한다. 요즘 TV를 보다 보면, 자극만을 추구하는 프로그램 비율이 높아진 걸 발견한다. 먹방이나 성적인 부분도 그 경계성이 없어졌다. 너도 나도 ‘쾌락 지연’보다는 ‘즉각 만족’을 추구하고 있어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된다.

물욕, 명예욕, 권세욕에 ‘관종욕’까지 추가되어 온갖 욕구에 사로잡혀 중독되게 만든다. 금력이나 지식욕, 명예욕은 당연히 인간의 죄성과 연관되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죄성을 억누르는 것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이 사회는 이러한 것들을 조장하고 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다 못해 미쳐 돌아가는 이 시대에는 진정 ‘절제’가 필요하다.

화병에서 분노조절장애로

예전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고 답답하다’며 주로 연세든 여성분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 증후군인 ‘울화병’ 또는 ‘화병(火病)’(실제로, 세계적인 정신질환 진단의 교범 역할을 하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Ⅳ)>(1994년, 미국정신의학회 발행)에는 ‘Wha-byung’을 한국인의 독특한 정신질환이라며 한글 발음 그대로를 반영시킴)이었다.

화병은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 되는 ‘대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분노를 지나치게 억압하여 발생된 정신질환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빠르게 변환되었고,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화병’에서 ‘분노조절장애’로 갑자기 전환되어 버렸다.

지나친 절제도 문제지만 절제 없는 감정의 폭주는 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 일면식도 없는 행인에게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폭행’을 하며,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갈등이 폭행과 살인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클랙슨 소리에 화가 난다며 보복운전을 서슴지 않고 있다. 최근까지 ‘분노 억제의 시대’를 살았다면, 요즘 우리는 ‘분노 폭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며, 중간과 균형을 추구하기 보다는 극과 극으로 갑자기 돌변할 수 있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특성과도 일맥상통한다.

건전한 스트레스 조절법 훈련 필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선 자기 나름대로의 건전한 스트레스 조절법을 훈련하고 습득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영혼(靈魂, 정신)과 육체, 양쪽 모두에 있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알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점검해보면 된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알아듣기 쉽게 ‘쓰리고(three-go)’라 표현한다. ‘쓰리고’란 ‘잘 먹고-잘 자고-잘 싸고’를 의미한다. 우리 몸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을 때는 생명유지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잘 먹고-잘 자고-잘 싸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거나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새우고 변비나 설사로 고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몸과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정기적인 운동, 즉 건강한 생활습관이 필수적이다.

오늘날과 같은 쾌락과잉의 시대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 크리스천은 과연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해야 할까. 크리스천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죄(욕심)는 눈으로부터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호기심도 일종의 죄악의 씨앗임을 명심하자. 하와가 호기심과 욕심에 이끌려 ‘눈(eye)’으로 바라본 선악과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지 않았는가. 유혹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 오기 마련이다. 도박, 섹스,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게임, 쇼핑 등은 전부 매력적인 형태로 ‘시각(視覺)’을 통해 접근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눈에 보이는 모든 가시적인 것은 유한하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 말씀뿐이다. 우리가 매일 아침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우리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 ‘즉각 만족의 충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100여 년 전,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분이 계셨다. 기독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민족대표 중 한 분인, 근곡 박동완 목사의 글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사람아 진실하자. 금전, 권세, 지식 이것은 다 헛된 것이다.…이 진실이 있어야 인류사회에는 평화를 누리며 행복할 것이다. 오늘날의 인생 같이 양의 가죽을 입고 이리의 마음을 품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오! 이 허위로써 장식하여 진실을 장사(죽게)한 우리 사람아! 이 허위에서 눈물 흘리고 진실에 옮겨 참 기쁨을 누리자.’

-1924년 11월호 <신생명> ‘권두언’ -

박재상

현직 정신과 의사(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이자 목사(참빛침례교회 담임)로서 평택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학제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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