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아파트 사람들 이야기 〈함께 걸어요 비단 길〉
특집 : 과잉시대를 사는 법

 

자신의 자녀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객관화된 평가에 부모는 좌절하고, 분노하고, 거부하고, 그래서 ‘과잉된 자녀교육’으로 응답하곤 한다. 그러나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려면 어렵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인정’과 ‘양해’. 마음이 참 단단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일 거다. 비단 자녀교육뿐 아니라 살아가며 어떻게 하면 과잉된 표현과 자기 방어 속에 숨지 않고,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을까? 비단길책방에서 의미 있는 책이 나왔다. <함께 걸어요 비단 길>(이정헌+윤정지 지음, 2021).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단단한 비단이 엄마

<함께 걸어요 비단 길>은 햇님아파트 단지에 한 아이가 이사 온 뒤 벌어진 여러 이야기들을 담은 만화책이다.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이름은 이비단. 이름에서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이가 비단 길을 걷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닐 그 아이와 부모의 삶은 힘겹지 않을까?

그러나 책은 이런 염려를 기우로 만든다. 시작부터 아주 밝고 경쾌하다. 책의 주인공인 세 꾸러기들 때문이다. 누구와도 편견 없이 소통하는 마을의 골목대장이자 꾸러기 삼총사의 리더 정호야, 순수하면서도 사려 깊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 방민식, 외할머니랑 단둘이 살지만 호야랑 민식이랑 함께 놀 때가 가장 즐거운 유진주가 바로 그들이다.

삼총사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비단이를 만난다. 삼총사의 놀이에 자꾸 끼어들려 하면서도 말은 못하는 아이. 삼총사는 비단이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도망’을 선택한다. 그런데 비단이가 그들을 쫓아가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윽고 등장한 엄마로 인해 삼총사는 적잖이 당황한다.

리더인 정호야는 혼날까봐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아줌마,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그러나 비단이 엄마는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우리 비단이 때문에 많이 놀랐지? 아줌마가 대신 사과할게.”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비단이 엄마는 왜 사과한 걸까? 삼총사는 어안이 벙벙했고, 이어지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단단함을 엿볼 수 있다.

“비단이에게는 발달장애가 있어. 표현 방법이 조금 다르지만 천천히 꾸준히 성장하고 있단다. … 가끔씩 시간 될 때 같이 놀아주면 안 될까?”

지은이는 비단이 엄마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항상 큰 가방을 메고 다니며 긍정적인 생각과 실천을 하는 비단이의 멋진 엄마’. 정말 멋진 엄마다. 모든 것을 터놓고 비단이에 대해 삼총사에게 양해를 구한 엄마.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단단한 마음’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삼총사는 각자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외국에 산 경험이 있었던 진주는 말이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답답했던 경험을 나누며 말 못하는 비단이의 상황에 공감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기에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던 민식이는 먼저 손을 내밀어준 호야가 참 고마웠다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비단이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좋은 형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숨기고 싶었을 과거, 외로움과 소외의 경험을 터놓으며 삼총사는 비단이를 공감하고 받아들인다. 이 책은 단단한 엄마의 열린 마음이 마중물이 되어, 아이들도 열려지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만남을 계기로 마을 사람들 전체가 비단이를 사랑하게 되며, 서로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들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내용을 20화에 걸쳐 보여준다.

햇님아파트 공동체는 배려와 존중을 키워드로 삼게 되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이가 ‘불편’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삼총사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느라 수염 깎을 시간도 없어 덥수룩한 모습으로 나타난 비단이 아빠도 이해하게 되고, 거동이 불편한 이웃이 장애인 택시를 놓쳐서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해도 넉넉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게 된다. 햇님아파트는 비단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다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그렇기에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삶의 학습 터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단단해져갔다.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계하며, 배척하는 것이 과잉된 우리사회. 그런 문화에 길들여질수록 내면의 단단함을 잃고 짙은 울타리를 치는 우리네 삶. 바로 여기에 햇님아파트 사람들 같이 단단한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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