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정원사로 살아가기 - 김순현 목사가 가꾸는 여수 ‘비밀의 정원’

‘가보고 싶은 100대 정원’ 선정

글을 쓰면서 지면 안에서 시각뿐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이 구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오랜만에 하게 됐다.

2017년 국립수목원이 발표한 ‘가보고 싶은 100대 정원’에 선정된 여수 ‘비밀의 정원’을 가보고 나서의 생각이었다. 돌산 바닷가에 위치한 그 정원에 발을 내딛었을 때 들었던 새소리, 꽃냄새, 풀냄새, 바다 냄새, 나비의 날갯짓 모두를 독자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그 공간에 들어서기만 하면 비밀의 정원이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

왜 만들었을까

전남 여수 돌산 갈릴리교회 김순현 목사는 목회자이며 정원사이다. 2004년 갈릴리교회에 부임한 후 거의 17년째 ‘비밀의 정원’을 만들어 돌보고 있다. 철마다 다른 꽃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새와 나비가 함께 노니는 그 정원, 길 가던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그 아름다운 공간은 온전히 김 목사의 땀과 정성으로 가능했다.

그가 비밀의 정원을 만들고 가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는 텃밭이었어요. 부임한 다음해 여름을 나는데 너무 뜨겁더군요.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그곳에 나무부터 심었어요. 그리고 2006년 봄부터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김순현 목사는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디트리히 본회퍼>, 아브라함 헤셀의 <안식>, 매튜 폭스의 <영성 자비의 힘> 등 다수의 영성 고전을 번역한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그런 재원인 그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창조 영성’이었다. 미국의 영성신학자 매튜 폭스 등 여러 학자들이 말하는 창조 영성을 연구하면서 김 목사는 있는 그 자리에서 피조물들을 돌보고 사는 것이 사명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돌보며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깨달음.

“우리는 하나님의 밭을 잘 돌보라고 부름을 받은 정원사들입니다.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은 성령의 성전인 우리 몸을 돌보는 것에 뒤지지 않는 참으로 바람직한 책무입니다. 하나님은 그 책무를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 책무는 모든 창조물에 대한 그분의 위대한 사랑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그 위대한 사랑에 깊이 참여하는 정원사가 되어, 하나님의 밭을 낙원처럼 가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쉽지 않지만, 해야 할

정원을 가꾸는 일은 보기만큼 아름답기만 한 일이 아니다. 무성히 돋아나는 잡초도 제거해야 하고, 더운 날 비 오듯 쏟아지는 땀도 견뎌야 하고, 혹여나 태풍에 상하지 않을까 나무와 꽃을 돌봐야 했다. 꽃마다 특징이 있어서 물주는 것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싹을 밟지 않도록 살금살금 들어가 꽃 종류마다 다르게 물을 주는 모든 몫을 감당해야 했다.

“여름에 소나기라도 내려주면 너무 고맙지요. 물주는 일이 보통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절대로 미루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물을 주지 않으면 가장 연약한 풀과 꽃이 힘들어해요. 사회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정원사의 마음으로 돌보지 않으면 소외되고 연약한 존재들이 제일 먼저 고통하게 됩니다.”

미룰 수 없는 일, 게으를 수 없는 일. 생명을 돌보는 일은 그런 일인 것이다. 정원 일구기는 김 목사의 표현대로 ‘임을 맞이하기까지 지속되는 길고 고된 기다림의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김 목사는 무조건 주는 역할만 할까. 그렇지 않다고, 받는 것이 많다고 고백한다.

‘정원은 그 속에 자리한 생명 하나하나를 온 마음을 다해 응시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는다. 따라서 정원사의 길은 생명의 신비를 찾아 나서고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순현 저 <정원사의 사계> 중에서

“자기 돌봄과 타생명체 돌봄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타생명체가 주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합니다. 파김치가 될 정도로 힘들어도 이튿날 또 다시 나갈 수 있습니다. 정원에서는 누구도 진을 빼지 않습니다. 서로 생명을 빚지는 것이라 할까요.”

동네 자랑거리가 되다

정원을 처음 가꿀 때 좋은 소리만 들었던 것은 아니다.

“거, 먹지도 못하는 거 뭐 하러 심냐”고 동네 어르신들의 지청구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원이 생기고 2~3년이 지나니, 그랬던 이들이 꽃모종을 달라고 하고, 이 정원 때문에 동네가 예뻐졌다고 칭찬하기 시작했으며, 교회처럼 집 마당을 제대로 정원으로 만드는 이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누구나에게 열려있지만 ‘비밀의 정원’ 이름답게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만 볼 수 있는 정원은 동네 이웃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아름다우니 들어오고, 들어와서 묻는다. 그러면 ‘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정원을 가꾸어야 하는지’를 태초의 에덴이란 정원을 만드신 하나님과 연결시켜 전할 수 있게 된다고.

“정원사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차적 성소라고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손수 창조하신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두시고 그곳을 돌보게 하셨지요. 정원사의 길은 모든 인간이 가장 우선적으로 회복하고 걸어야 할 참으로 바람직한 길입니다.”

함께 정원사가 되기를

유명세만큼 탐방을 하러 오는 교회들도 많다. 무슨 노하우가 있는지를 묻기 위해 오는 교회들에게 김 목사는 이렇게 권한다.

“도시교회들이 주차장 확보를 제1목표로 삼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보러 오는 정원을 먼저 마련한다면 교회 문턱이 낮아지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들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희도 교회에 와 본 적 없는 분들이 정원을 보러 들어오셨다가 등록하시고 교회 근처로 이사 오셔서 살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정원은 생명과 생명이 조화를 이루는 낙원의 상징이자,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러나 상속받게 될 완벽한 고향의 상징이기 때문에 교회가 정원을 만들고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생명을 경시하는 배금주의와 무자비한 자본주의로 인해 만물이 파괴되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흐름 속에서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맞서 정원사의 길을 걸으라고 하십니다. 생명을 철저히 긍정하고, 딛고 선 곳을 조화로운 정원으로 만드는 정원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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