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전안나 작가

40년 비밀을 털어놓다

“기자님, 청소년 세미나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말해줘요. 사실 나는 고아 출신이고, 입양 되어서도 학대 받으며 자랐다고.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런 나도 열심히 살고, 또 나아가고 있으니 절망하지 말고 힘내라고 하고 싶어서요.”

<1천 권 독서법>, <초등 하루 한 권 책밥 독서법> 등 독서와 글쓰기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자 18년 경력의 사회복지사, 강사, 칼럼니스트 등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전안나 작가(사진)에게 수년 전 보도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들은 비밀이었다. 아이들을 만나서는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녀의 책 속에는 나오지 않던 무거운 이야기.

“사실 저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 모르는 고아였고, 입양되어서도 여섯 살 때까지 양부모의 호적에 오르지 못한 무적자였어요. 그리고 20여 년간 가정 폭력을 당한 아동 학대 피해자였습니다.”

40여 년간 말하지 않았던 그 비밀을 전 작가는 최근 펴낸 에세이 <태어나서 죄송합니다>에서 고백했는데, 담담한 몇 문장으로 들었던 과거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아팠다. 폭력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나이에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고, 스무 살 성인이 되자 경제적으로 부양해야만 했다.

나는 재투성이 신데렐라였다. 양어머니로부터 학대받는 신데렐라가 되어 입양된 다섯 살 여름부터 양어머니 집을 탈출한 스물일곱 살까지 나는 매일 울었다.…나는 양녀로 간 집에서 식모였다. 요리와 설거지를 하지 않고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청소를 하지 않고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엄마가 싸준 도시락 반찬이 맛없다고 투정할 때, 나는 양부모님의 밥상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갔다.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 담아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에게 영감과 힘을 주었던 책을 연결시켜 저술한 책에는 어린 아이가 견디기에는 너무도 힘겨웠을 일들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양부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비밀로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마흔’을 주제로 글을 쓰다보니 이제는 이 이야기를 한 번은 털어내고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온전한 ‘독립’이 되겠다는 생각에. 쓰는 것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에게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책을 출간하고 KBS 아침마당과 EBS 다큐 프라임 <어린 인권>에 출연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국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입양아동과 아동학대를 당했던 이들이 전 작가의 이야기에 치유를 받았다며 연락을 해 왔다.

“작가님께 꼭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메시지 보내요. 책을 읽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아동학대,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항상 제 자신을 혐오하고, 항상 제 탓을 했어요. 그런데 오늘 작가님 책 속 ‘네 잘못이 아니야, 태어나서 죄송한 사람은 없어’ 이 문장이 얼마나 저를 꼬옥 안아주었는지 몰라요. 오늘 저를 살려주셨어요.”

 

이겨내고, 사랑하고

아동학대의 상처를 이겨낼 수 있었던 전 작가는 ‘책’의 힘이 컸다고 말한다. 10년 전부터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으며 그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고, 길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내겐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양부모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용서하는 법을 찾아가게 되었으며,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했다고. 이제 그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가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그때 당시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이제는 이유 없이 저를 도왔던 이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혼자서 치열하게 산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수많은 사람이 나를 길러주셨어요. 그래도 정확히 누구에게 사랑의 빚을 졌는지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기에 저는 그 빚을 무료 독서 강의나 시각 장애인 독서토론 등 재능기부를 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갚고 있어요. 전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상처가 명확해지고 상처의 크기가 오히려 제 크기가 되는 것을 느꼈어요.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사회복지사 활동을 잠시 멈추고 더 적극적으로 독서 세미나 클럽 운영 등을 통해 독서와 치유적 글쓰기를 권할 작정이에요.”

숨겨 두었던 입양과 아동 학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내 품을 내어 주고 싶어서이다. 이렇게 타인과 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아동 학대 생존자로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내 삶은 해피 엔딩도, 새드 엔딩도 아닌 ‘진행형’이기에.

전안나 작가는 책 속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생존자’라는 정체성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숨죽여 울면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이 땅의 피해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 역시 생존자입니다’라고. 태어나서 늘 죄송했던 그 모든 순간을 다 내려놓고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자고 권한다.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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