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미디어에 노출된 세대를 어떻게 도울까

 

스마트폰 없인 못 살아

직장 일이나 공부 등으로 유아기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종종 밀어두었던 엄마들은 어떤 말이 들릴 때마다 자책이 밀려온다고 한다. 아이가 느리다거나 잘 집중하지 못한다고 할 때.

그러다가 좀 더 자라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더 큰 막막함에 사로잡힌다. 울고 웃는 소통의 모든 길이 그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듯, 자기 세계에 갇힌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 대화해야 할지 모를 때를 맞으면서다.

SNS라 불리는 소셜 미디어는 보이는 것 외에 부풀려진 모습이 넘쳐나는 곳이다. 뇌과학자 애나 렘키는 이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디지털 공간에서 얻는 것은 약간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조급함, 알 수 없는 슬픔, 적개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런 매체에 집착하게 되는 마음은 무얼까. ‘성공’과 ‘보이는 물질적 가치’가 우선이 된 사회와 가정에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바탕이 된다. 권태로움을 넘기려 자극을 찾게 되고, 단조로움이 지루해 쾌락을 추구하며, 울적한 마음에 도피처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SNS로 통하며 스마트폰으로 강화되어 스마트폰을 통한 소셜미디어가 ‘고도의 도파민 상품’이라 불린다. 쾌락을 느끼는 도파민 호르몬을 세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쾌락에 적정선이 있는가

현대는 마치 쾌락을 누리기 위해 일하고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런데 그 쾌락이 ‘즉각적’ 만족을 주는 것이라면 금방 거기 길들게 된다. 즉각적인 보상과 장기적인 보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할 때, 감각적인 것에 먼저 끌리게 되고, 그 쾌락은 쉽게 침투한다.

고도의 쾌락에 빠지는 것이 바로 ‘중독’이다. 건강이나 인간관계,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경우,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가까이 편하게 사용하는 휴대품이 되어 더 빠져들기 쉽다.

귀찮은 일을 피하고(고통 회피)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려는 쾌락 추구는 좀 더 자극적이고 스릴 넘치는 게임이나 음란한 게시물을 탐하게 하다가 다시 고통으로 돌아온다. 두통이 있을 때 진통제를 먹어 고통을 없애는 것처럼 필요할 때 사용하는 쾌락 추구는 좋은 것이나, 습관이 되고 오래 머물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선을 넘게 되는 거다. 그러므로 스스로 관찰할 힘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는’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적정선의 쾌락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과 치료 중에는 ‘고통스러운 자극’도 있다. 찬물 입욕이나 절식, 침묵 등 고통스러운 자극이 적당하게 주어질 때 그것으로 인해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돌봄과 적절한 좌절감

놀랍게도 넘치는 부(富)가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다릴 필요 없고 결핍을 모르는 환경은, 도파민을 과부하 시켜 ‘보상을 미루는’ 능력을 저하하게 하기 때문이다. 풍요 가운데 무언지 모를 공허와 빈곤감을 느끼는 상태가 감각적 쾌락을 선택하게 하는 것.

비슷한 맥락으로 스카이다이빙이나 산 정상 정복 같은 자연적 도취에도 자주 노출되면, 일상에서는 불쾌감을 상대적으로 많이 느끼게 된다고도 한다. 보통 깊은 몰입을 창작과 창의성의 최고의 자리에 두지만, 그 흐름은 마약과 같아서 특유의 도취감으로 인해 가족에게 덫이 될 수도 있음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도파민이 넘쳐나는 세상, ‘자기를 절제하게’ 하는 돌봄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 시작은 역시 유아기부터로 시작된다.

주의력 발달을 고려하는 양육자라면 만 2세 이전 아이에게 미디어 노출을 금해야 한다. 그러면서 허황되지 않게 아이의 성장과 함께 ‘현실적인 목표’와 자아상을 갖게 하는 것이 한 단계씩 잘 성장하게 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일이나 성취 중독의 어른으로 인해 아이를 외롭게 하거나 학습 기계로 만드는 일도 주의해야 할 점이다.

아이의 기질을 잘 살펴 적절히 돌보는 일은 학령기 시절 너무도 중요하다. 사려 깊은 아이인지, 명랑하고 사교적인지, 신체적으로 예민한 아이인지에 따라 기질이 억압되지 않게 대해야 깊은 상처가 남지 않는다.

솔직한 양육자

‘솔직함’은, 미래에 중독으로 가는 상황을 막아주는 귀한 삶의 태도다.

언어가 발달할수록 거짓말은 정교해지고 전략이 되기도 하기에, 솔직함은 매일의 도전이 되는 과제다. 말을 꾸며서 돋보이게 하고 싶은 욕구와 ‘아차’ 싶은 행동을 변명하려는 교묘함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느끼면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솔직함은 뇌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 행동을 확실하게 의식하게 해 책임 있는 삶을 살게 하므로, 진실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친밀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며, 그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어른이나 아이나 일기를 쓰고,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고백하는 기도를 통해 솔직함을 조금씩 훈련할 수 있다.

어른이 필요하다

이 세대는 더 바빠진 부모 밑에서 공허하게 자란 세대다. 엄마가 없는 집, 아이들은 속마음을 터놓는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SNS에 매달리게 된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줄 수 있고, 나름대로 꾸며 보일 수 있는 세계가 안전해 보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모습 역시 그만큼만 보게 되며 내면의 애쓰는 시간을 나누지 못하는 맹점을 갖게 된다. SNS에서 말하는 어려운 이야기들조차도, 이미 보여주려 연출한 장면임을 알게 되면 ‘진심’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것을 기다려주며 곁에 있어줄 때 비로소 마음을 열고 밑바닥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 세대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복음’을 말할 수 있는 때라고 이들을 지켜본 교사는 말한다. ‘말씀을 읽어라, 외우라’ 하기에 앞서 이 세대는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어떤 말도 담으려 하지 않는다고. 진심, ‘물질 너머의 성숙한’ 어른의 자세를 더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어른다운 어른이 필요하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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