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은사를 가진 선교사

10년 전 이맘때, 그분을 만났습니다. 높은 산 위에 만들어진 이 도시는 여름이면 시원한 날씨 때문에 유명한 휴양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을 만나 예수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분은 누구를 만나든 사람 자체를 좋아했습니다. 번듯한 옷을 입은 신사를 만나도,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 아이를 만나도 대하는 태도는 변함이 없습니다. 선교사로 오래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겪다보면 사람을 그냥 좋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이웃들이 모두 도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좋아합니다. 좋아할 뿐만 아니라 가진 것도 다 나누어 줍니다. 아침으로 먹으려고 가져온 사과 하나도 굶고 있는 아이를 만나면 미련 없이 건네줍니다.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도 좋아합니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 주인 없는 강아지를 만나면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버려진 동물들은 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아무리 주의를 줘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성품 때문인지 현지인 목회자나 성도들은 그에게 남다른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서로 통하는 듯합니다.

절망이 사랑의 씨앗을 틔우고

그가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지독하게 힘들어 삶의 끝자락까지 경험했을 때, 그는 도망치듯 무작정 비행기를 탔습니다. 아무 계획도, 목표도 없이 들어와 공항에서 멀지 않은 시골 마을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소똥 냄새가 진동하고 파리 떼가 우글거리는 동네였지만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를 햇빛으로 다시 꺼내준 사람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골목길은 쓰레기투성이, 먹을 것은 빵 한 조각, 장난감이라고는 녹슨 빈 깡통뿐이었지만 걱정도, 부러움도 없이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그는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어떤 본능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세상의 온갖 쓰레기 같은 것들에 묻혀 싹을 틔우지 못했던 그의 은사, 사랑이라는 씨앗에서 싹이 나며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외국인 없는 한적한 시골에서 살면서 배탈이 자주 나서 아픈 날도 많지만 한 번도 잘못 왔다고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예배자

그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먼 마을들을 다니며 선교를 하지만 선교사라고 불러주는 것을 정중히 사양합니다. 현지인으로 인정받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대신에 ‘예배자’라고 불러 달랍니다. 예배가 없는 미개척 마을에 들어가 예배를 시작하는 예배자, 교회가 없는 곳에 작은 마을 교회를 개척하는 예배자. 그는 그 당시 많이 불리던 복음성가 하나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를 예배하리라. 아무도 찬양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 주를 찬양하리라…’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나라를 송두리째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목숨을 잃은 사역자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성도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배자로 살고 싶어 하던 그 선교사님이 이전에 살던 마을에도 바이러스가 예외 없이 덮쳤습니다. 연락마저 끊긴 그 선교사님께서 이 죽음의 파도를 잘 견뎌내고 있는지 염려되었습니다. 지금도 배탈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병든 사람들 돌보다가 자신이 병들어 쓰러진 것은 아닌지…. 처음 그분을 만났던 겨울, 그때 생각이 나서 묵묵히 기도를 합니다. 그분 안에 있는 사랑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힘이 되어주길, 그리고 그분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흔적이 남겨지길 소원하면서.

박태수

C.C.C. 국제본부 총재실에 있으며, 미전도종족 선교네트워크 All4UPG 대표를 맡고 있다.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땅 끝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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