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운동’ 벌이는 로고스서원 김기현 대표

인생을 다시 쓰다
“책을 읽다가 책을 쓰게 되고, 책을 쓰고 나니 인생을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부산 로고스교회에서 목회자로, 글쓰기 운동을 하는 로고스서원(www.logosschool.co.kr)에서 대표로 활동하는 김기현 목사와 비대면 인터뷰를 가졌다. 온·오프라인 글쓰기 학교, 묵상반, 설교 쓰기반, 고전 읽기반 등 다양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 김 목사. ‘쓰기’란 무엇이고, 그가 읽고 쓰는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론적으로 글 쓰는 것에 치유적 힘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제 경우에 글을 쓰기 위해 과거의 힘든 기억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생각을 꺼내는데 그것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때 사람들의 눈빛, 말, 힘들었던 기억들을 호출해내는 것이니까요. 기억을 되새기다가 몸이 아픈 적도 있었고, 한두 달간 글을 쓰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거죠. 그런데 내 고통에 직면하게 되고, 직면한 것을 글로 승화시켜내면서 고난이 풀리기도 하고 정리도 되었습니다.”

그의 경험은 책으로 정리되어 나왔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되새기면서 고난에 관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질문들을 버무려 쓴 책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복있는사람, 2016)이다. 부산에서 목회하는 첫 5년간은 “죽음을 향해 살았다”고 설명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이었다고 설명한다.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목회자로서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여겼던 시간동안 자존감이 뭉개졌습니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깨지니 자아 정체성이 상실되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 과정’이었다. 죽음을 바라보던 삶에서 글쓰기를 통해 생명을 깨닫는 삶으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김 목사는 잠시 울컥했다.
그렇게 글을 쓰며 인생을 다시 쓰게 된 김기현 목사는 현재 ‘글 쓰는 사람’을 기르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했듯 버거운 인생길에서 ‘쓰기’를 통해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스스로가 행복해지며, 사람들이 변화되고 만족해하는 것을 보면서 사명감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쓰기를 통해 자기를 성찰하다
글쓰기 학교를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사례들이 궁금해졌다.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50대·여성·목회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성으로서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었던 그 분들은 ‘죽음의 골짜기’를 한 번쯤 통과해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해, 부모님과 고향에 대해 글을 쓰면서 많이 울기도 합니다. 때론 부부 사이에 받은 상처를 글로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 모두 함께 펑펑 울어주고 공감해 주지요.”

글쓰기 모임에서 속상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때면 다른 여성들도 ‘나도 그랬다’, ‘우리 집도 그렇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한다. 대화의 끝은 항상 “목사님은 어떤데요?”로 귀결되는데, 김 목사는 “아버지나 남편 때문에 속상하신 경우에는 모든 남성을 대신해서 뭇매를 맞기도 한다”(웃음)며 글쓰기 학교의 솔직한 풍경을 전한다.

“한 번은 참석자 분이 ‘남편이 내가 쓴 글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얼음이 되었죠. 집에 가면 2차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걱정했습니다. 그 남편은 모두가 아는 경상도 상남자였거든요. 자신과 싸운 이야기뿐인 아내의 글을 보았고, 그 글을 모임에 가서 발표까지 한다고 하니 큰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김 목사는 이것이 글쓰기뿐 아니라 읽기의 힘이라고 말한다. 말로 들었으면 감정부터 상할 일이라도 글로 보면 ‘객관화’가 된다는 것이다. 글 속의 ‘나’가 주관의 ‘나’가 아닌 객관의 나로 변할 때 자기 성찰적 읽기가 시작된다.

“또 다른 경우도 있어요. 가족과 있었던 힘든 일들을 글로 써오겠다는 여성이 3주간을 뜸을 들였습니다. 결국 자신이 써온 글을 읽다가 대성통곡을 하느라 잘 읽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가족 때문에 ‘날개 없는 추락을 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문장은 그 가족을 이해하는 말로 맺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처음부터 생각했는지 물었죠. 답은 ‘쓰다 보니, 나왔다’였습니다. 힘든 상황을 글로 쓰다-울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이 보였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나를 힘들게 하는가?’를 묻게 되고 그러니 그 사람의 힘듦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단 상담과 치유를 경험하다
김 목사는 최근 청소년들과 ‘희망의 인문학 운동’을 하고 있다. 비행으로 인해 소년 재판을 받고 청소년 회복지원 시설에서 6개월간 생활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2007)를 보았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인데 아이들이 그 영화를 보더니 자기들의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학교나 세상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그 아이들의 삶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아픔과 상처가 잔뜩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폭력 속에 자랐단다. 저녁 7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각목으로 맞은 경호(가명)의 이야기를 글로 나누자 여기저기서 ‘나도요, 나도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폭력적 행동으로 인한 이혼, 엄마의 떠남, 거기에서부터 오는 상실감과 상처가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피해자로 자란 아이가 가해자가 되어서 이곳에 들어온다”고 설명한다. 또한 피해자에서 가해자라는 이중 신분이 된 아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함께 울고 몸살을 앓는다.

“더 심한 경우는 여자 아이들입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친족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자신을 지켜주었어야 할 어머니는, 외면하거나 그저 덮으려고만 한 것입니다. 한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일주일 동안 글로 썼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기억과 직면하게 되니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어했죠. 그래서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몇 시간을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향한 자신의 삶을 성찰했던 김 목사의 경험이 그 아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서 글로 기록하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기에. 그러나 그 아이는 결국 글을 썼고, 김 목사에게 주었다. 글을 받고 돌아가는데 버스정류장까지 따라와서 그 아이가 한 말 때문에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릴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 내 고통이 100이었다면 이 글을 쓰고 30이 씻겨 나갔어요.”

현재 ‘희망의 인문학 운동’은 2015년 3월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8개의 회복센터(부산 4, 김해 2, 울산 1, 대구 1), 보육원(새빛기독보육원) 등 총 9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 목사는 앞으로 탈북청소년, 다문화 가정 자녀, 소년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운동으로 점차 넓혀갈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꼭꼭 숨겨뒀던 아이들의 삶의 이야기가 읽은 만한 글이 되고 책이 되기를 바라며 글 쓴 대로 살아내는 아이들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꿈을 품고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글쓰기’라는 수식어를 빼면 그곳이 ‘집단 치유 상담소’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든 경험을 글로 쓰는 과정에서 자신과 ‘직면’하게 되고, 쓴 글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며, 이것이 때로는 통곡을 동반할지라도 치유로 나아가게 되기에 그렇다. 김 목사는 사람들마다 짊어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내려갔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 힘이 얼마나 큰 지를 전한다.
글쓰기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4년 첫 모임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전체 2년 과정으로 처음 1년 동안은 책 한 권 쓰기를 위한 읽기와 쓰기를 수련하고, 다음 1년 동안은 책을 한 권 써서 정식으로 출판한다. 최근에는 온라인 글쓰기 강좌를 확대하고 있다. 그의 사역에 더 많은 공감과 치유, 그리고 회복의 열매들이 맺히기를 바라본다.

민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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