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스크린을 통해 만나게 되는 영화 속 인물들은 성별, 인종, 종교, 국적,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와 소통한다. 말 한 마디, 눈빛 하나로 충분히 우리를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넘어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영화들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로, 이 가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법한, 뻔하지 않은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하나. 살아 있기에, 움직이고 행동한다.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2015)
그렉은 친구들과 사귀는 것도 싫어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것도 싫어하는 고등학생입니다. 친구들과 스쳐 지나가듯 인사만 교환하며,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학교에 다니려 노력해요.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얼과 함께 패러디 영화를 만드는 취미가 있긴 하지만, 그걸 남에게 보여주는 법이란 없습니다. 그저 책장에 진열해놓을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위기가 닥쳐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레이첼이라는 여자아이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가 그렉을 떠밀어 문병을 보냅니다.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그렉과 레이첼은 이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허무주의에 찌든 남학생과 죽음을 앞둔 우울한 여학생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형성된 거예요. 그러면서 살아있으나 정지된 것처럼 지내던 그렉을 죽어가는 소녀 레이첼이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제 그렉은 얼과 함께, 레이첼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레이첼 주변 사람들 인터뷰를 편집해보며 여러 시도를 하지만 영 신통치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제작 과정 중 얼과 다투는 일까지 벌어져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영화를 레이첼에게 보여주는데, 그 장면이 압권입니다. 그렉의 영화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독특한 작품이에요. 그런데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죽는다는 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죠. 이제 곧 멈추게 될 ‘죽어가는 소녀’ 레이첼에게 웃고·말하고·먹고·마시는 게, 그리고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놀라웠던 건지를 알려줍니다. 얼굴 떨림 하나하나도 살아있기에 가능했던 건데, 사실 우린 평소에 그걸 전혀 자각하지 못하지요.
그렇습니다. 영화는 죽어있는(혹은 멈춰있는) 사진·그림에 움직임을 통해 생명력을 부여했던 겁니다.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움직임을 담아온 게 영화의 정체성이니까요.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는 그렇게 살아있음(生)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살아있으니,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라고 말이죠.

둘. 살아 있기에, 사유하고 더불어 생각한다.

미국 대법원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여성 권리증진에 앞장섰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1933-2020)이 지난 9월 18일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미국 대법관은 총 9명으로, 탄핵당하거나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그 직을 평생 수행할 수 있어요. 그렇게 종신직이기에, 임기가 최장 8년뿐인 대통령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대법관의 진보·보수 성향에 따라 미국 사회 전반의 흐름이 달라지고, 향후 미래가 새롭게 설계됩니다.
대법원 안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견과 판결을 내놓았던 긴즈버그는 미국 진보의 아이콘으로, 보수적인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 긴즈버그 사후, 지금 미국에서는 후임 대법관으로 누굴 임명하느냐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 중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붙는 표결집 현상이 일어나면서, 긴즈버그의 죽음은 트럼프 재선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차대한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2018)는 그 긴즈버그 대법관의 일생을 추적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평생 성평등에 앞장선 그녀는 “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라면 만족하겠느냐”는 질문에, 항상 “9명 전원”이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의 생각이 일견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 충분히 납득할만합니다. 여성 대법관이 임명되기 전까지, 미국 역사 190년 동안 항상 9명 전원이 남성 대법관들로 채워졌었지만 그동안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설사 9명 전원이 여성이 된다고 해서 그게 이상할 일이냐는 거죠. 이렇게 그녀는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얻어낸 논리로 상대방을 이해시켜나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권신장을 위해 여성만 변론한 건 아닙니다. 때로는 남성이기에 차별받는 상황을 변호함으로써, 사회에 만연한 성적 불평등 구조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늘 이렇게 말해왔답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마라! 싸우려고 하면 역효과가 나고, 소리를 높이면 상대방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요점만을 정확히 집는 유치원 선생의 자세로, 상대방을 설득시켜나갔습니다. 실제로 다큐 속 그녀는 단 한 마디, 한 단어의 중언부언도 없이 차분하게 설명해나가요. 그렇게 대화와 설득의 정치를 실천했던 거지요. 다른 대법관들에게 거부당해 비록 소수의견(반대의견)으로 남은 경우가 많았음에도, 대중은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였습니다. 당장은 져도, 대중을 이해시켜 미래를 바꿔나간 게 바로 긴즈버그 대법관입니다.
물론 보수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판결이나 의견이 마뜩찮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걸어왔던 길, 그리고 그녀와 그녀 주변인의 삶을 보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녀를 있게 한 것이 그녀의 어머니·남편·자녀인 걸 보면, 자연스레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삶은 혼자 일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쌓아나간다는 걸 확인하게 돼요. 대수롭지 않은 일, 예를 들어 거리의 휴지를 줍는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 우린 이 세상의 소중한 한 부분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요, 그렇게 자신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나간다는 걸 말이죠.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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