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친구'를 생각하다

하루건너 약속을 잡아 폭넓게 관계 맺던 젊은 직장인, 여유나면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던 주부들, 금요일이면 지인과 약속을 잡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의 직장인, 응원하는 팀의 스포츠 경기를 직관하거나 영화를 보며 데이트하던 연인들, 북클럽 모임에 참석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던 사람들까지. 코로나19 이전, 우리가 관계 맺던 위와 같은 방식들은 주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거나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공간에 참여하는 식이었다. 지난 반 년, 우리 삶은 완전히 달라졌고 이제는 비대면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고민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편지 주고받으며 피어난 우정
직접 만나지 않고 인격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휴대폰으로 쉽게 통화할 수도 있지만, 이참에 집안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을 배경삼아 ‘편지’로 새롭게 관계 맺어보면 어떨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한 진심을 종이에 적어보는 거다. 그리고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인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보는 것.

아동문학가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편지는 글로 우정을 맺은 아름다운 예다. 서로의 글을 읽고 직접 만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던 두 문학가는 1973년 1월 얼굴을 맞대고 마음을 나눈 후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1970년대, 경상도 산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난한 교사 이오덕과, 안동 일직에서 교회 종지기를 하며 단칸방 생활을 하던 더 가난한 권정생이 자주 만날 일은 요원했다. 모든 게 부족하고 많은 게 갖춰지지 않은 시절, 어쩔 수 없이 비대면 관계를 맺어야 했던 그들이지만 직접 접촉 없이도 그 우정은 편지로 아름답게 피어났다.

이오덕 선생님 / 다녀가신 후, 별고 없으셨는지요?/바람처럼 오셨다가 제(弟)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습니다. …소리소리 지르며 통곡하고 싶은 흥분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가슴으로 자꾸만 모아들이는 아픔이란, 선생님은 더 많이 아실 것입니다.

권정생 선생님 / …선생님의 진정이 넘친 편지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 …저도 선생님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 괴로울 때마다 저는 권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편안한 생활 속에서는 결코 참된 문학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생각해 봅니다.

서로를 깍듯하게 ‘선생님’으로 부르는 이들처럼 정제된 언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다 보면, 직접 만나 즉흥적인 말로 상처를 주고 마음에도 없는 감정을 표현하던 것과 다른 결의 관계를 가꿔갈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때문에 약속을 취소한 오늘 그 친구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해볼 기회, 지금이다.

편지, 세상과 소통하는 오래된 미래적 방식
편지하면 다산 정약용을 빼놓을 수 없다. 오랫동안 유배지에 있던 그에게 편지는 세상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관계를 맺는 유일한 소통방식이었다. 40세에 유배지로 떠나야 했던 다산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18년 동안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세상사는 방식을 가르치고 아버지로서 정을 나눈 그를 보면, 편지가 가진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다. 매일 보면서도 건네지 못할 깊은 가르침을 먼 곳에서 글로 전했으니.

“아침에 햇볕이 먼저 든 곳은 저녁에 그늘이 먼저 들며, 아침에 핀 꽃은 먼저 시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뜻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고 하여 청원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 속에는 항상 가을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를 기상을 품고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얼굴 보며 직접 전하기에는 너무도 깊은 사유와 표현이 필요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이처럼 편지란 오래된 우정의 매개이자 진심의 통로였다.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관계 맺기에 익숙해진 우리지만 비대면 시대를 맞아 이 오래된 미래적 방식인 편지로 우정 혹은 사랑을 새롭게 가꿔보아도 좋겠다.

* 참고도서 :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양철북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창비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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