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마을과 숨쉬다

“안녕하세요? ○○에서 온 대한외국인입니다.”
외국인들이 크게 늘었다. 우리말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다. 눈을 감고 들으면 한국 사람이라 여겨질 만큼 말이다. ‘대한외국인’, ‘외국인 주민’은 TV와 SNS, 지역사회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새로운 ‘이웃’이 된 사람들. 지역사회에서 이들을 향한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 동네, 마을이 그들에게 손을 건네고 있다.

급증하는 외국인 주민
필리핀 출신의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장 캐서린 안 코르테자 씨는 ‘가교’ 위에서 특별한 일을 해왔다. 외국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를 대신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 학업, 취업, 결혼 등 인생 중대사를 한국에서 마친 외국인 여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은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예요. 한국에 오는 외국 분들도 그렇게 변모해 왔어요. 한국에 대한 관심 때문에 찾아오는 경우가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임금 체불, 근무지 변경 문제로 고용주와 갈등하던 외국인을 대변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는 그. 지금은 한류 때문에 한국살이를 시작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난다. 불과 10여 년 만에 달라진 모습이다.
“또 하나의 트렌드가 있어요. 한국에서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에요. 저와 같은 대한외국인의 등장이죠.”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참 편하고 편리한 국가지만, 상당히 많은 불편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바로 ‘시선’과 ‘소통.’
“한국 분들이 외국인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어야 할 정도로 여러분의 이웃사촌이 달라지고 있답니다.”

외국인 명예통장
‘외국인 명예통장’의 등장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 광주광역시와 서울 구로구, 영등포구에 이어 7월에는 용산구에서도 외국인 명예통장을 임명했다. 전통적인 마을 소통의 핵심 제도가 외국인에게도 확장된 것이다. 명예통장 제도를 처음 시작한 곳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이다. 광산구청은 7년 전, 외국인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문화의 공존을 이루기 위해 ‘외국인 주민 통장제도’를 시작했다. 이들을 한국사회에 적응시키는 ‘동화주의’가 아닌 ‘다문화주의’에 입각한 외국인 정책이라는 데 무게중심을 두었다.
“외국인 주민들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여러 어려움을 겪습니다. 명예통장제도의 시행으로 그들의 언어로, 유용 정보를 직접 공유하고 어려움을 지자체에 요청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광산구청 정유선 팀장의 말처럼 광산구는 1만 7천 여 명의 외국인 주민들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 반응은 뜨거웠다. 2년 임기의 외국인 명예통장들은 매월 외국인 동민들과 반상회를 연다. 명예통장이 구의 전달사항을 자국어로 공유하면 동민들 역시 개선 사항을 통장에게 전달한다. 이어 명예통장은 광산구 공직자들과의 월례회의를 통해 직접적인 소통을 갖고 외국인 주민들의 각종 민원과 요청 사항을 전달한다. 그 결과 형편이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각종 지원이 제공되는 등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함께
외국인 명예통장 제도는 서울에서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용산구청의 경우 처음 모집하는 명예통장 정원(30명)에 44명이 자발적으로 지원할 정도로 관심과 호응이 높다. 현재 TV에서 활약 중인 줄리안 퀸타르트 씨(벨기에․사진 맨 위)와 자히드 후세인 씨(파키스탄) 등 외국인 방송인들도 자청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모았다.
용산구청은 외국인 주민이 당당하게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주민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명예통장을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인 통장들과의 정례적인 만남을 구상하는 등 향후 외국인 주민과 한국 주민 간의 직접적인 교류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광산구청에서 4년간 명예통장으로 활동 중인 등추려 씨(중국)도 같은 결의 바람을 이야기한다.
“저희도 한국 엄마들처럼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큽니다. 한국 엄마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자녀 교육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한국 엄마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등추려 씨의 말속에 외국인 주민들이 느끼는 아쉬운 바람이 있다. 외국인, 한국인 구분 없이 한 마을에서 만남을 이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소통방식이 있을까. 우리 동네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주민들을 이웃으로 인식하는 것, 외국인 주민들이 갖는 한결같은 소망이다.

“오픈 마인드”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 코르테자 센터장 역시 외국인 주민들을 향해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누누이 당부한다. 이를 위해 명예통장들 역시 지역사회의 마을 청소나 축제 등 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터줏대감인 한국인 주민들과 자주 눈인사를 나누기 위함이다. 지금은 ‘아직’이지만, 외국인 명예통장 제도가 서먹한 마음을 친근한 시선으로 바꿔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명예통장이 우리에게 열린 마음을 가져다 줄 마중물이 될 지 지켜보며 응원할 일이다.

김희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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