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때’를 알고 살다

하늘의 낯빛과 땅의 낯빛, 사람의 낯빛을 찬찬히 살피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기에 ‘때’를 알 수 있었다. 이파리 색이 변하는 것만 봐도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 수 있었고, 이웃들의 얼굴만 봐도 어려운 때를 지나는지, 좋은 일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에 맞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때’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를 놓치게 되고,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신호를 놓치게 되었다. 그렇게 신호를 놓친, 때를 모르고 살고 있던 어느 날,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들이닥쳤다. 가방 속에서 비정한 부모로 인해 죽어가는 한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이국땅의 한 생명은 경찰의 무릎 밑에서 숨을 쉴 수 없다며 어머니를 부르며 스러졌다. 왜 우리는 신호를 놓치고 만 것일까.

최근 세계적 영장류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은 인류의 동물 학대와 자연 경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15년 전 그의 저서 <희망의 밥상>에서 “바이러스가 종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치명적인 변종 독감 바이러스가 되어 인류에 대재앙을 가져오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우려도 일고 있다”고 예고한 것이다. 이미 자연은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축장의 조립 라인은 노동자들이 동물을 죽이는 과정 전체를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어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공장제품으로 보게 하였다. 그런 시스템을 도입한 나치들은, 유태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신호를 놓치게 된 이유, 우리가 자연과 떨어져 살게 되고, 사람들과도 각각 떨어져 살게 되면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안 보이니까. 안 들리니까.

‘때’를 알고 사는 삶이란, 그리하여 신호를 감지하는 삶,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생명감수성을 높이는 삶이다. 그 삶을 이제 다시 살라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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