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힘 있는 말은 어떻게 하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쉽게 나오는 거칠고 무례한 말,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옮겨 이웃을 오류에 빠뜨리는 말, 지나친 자랑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 속에서 가끔 생각한다.
‘아, 좋은 말을 하고 싶다.’
마음속 그대로를 표현하기도 하고 속사정을 숨기기도 하는 말. 우리는 때로 선의로, 때로는 심술로 사실과 다른 말을 하게 된다. ‘정말 멋있어요.’ ‘괜찮아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렇다면 좋은 말이란 어떤 걸까.
잘 듣고 합당하게 하는 ‘친절한 말’,
정확한 뜻을 소통하는 ‘맞는 말’,
그리고 ‘필요한 말’인가가 말할 때 지나야 할 ‘세 황금 문’이라 한다(데이 C 셰퍼드).

언어 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바삐 돌아가는 생활 가운데 자신의 말을 제대로 짚어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언어 교정을 통해 삶의 ‘따스함’을 높이고 싶다면, 자신이 자주 쓰는 단어를 체크 해보는 것이 좋다. 자신의 말을 기억하고 스스로 들으려는 노력은 이때 매우 도움이 된다.

✽ ‘항상, 절대로, 꼭, 당연히, 한 번도’에 악센트를 넣어 종종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닌 비합리적인 신념을 강하고 과장되게 전하는 스타일로, 말의 진실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 ‘해야 해. 가야 해. 안 하면 안 돼’라는 말은, 삶을 의무적인 태도로 사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로 경직된 소통을 하며 삶에 너그러움이 부족할 수 있다.

✽ ‘왜? 왜냐하면’을 많이 쓰는 사람은 인과적 사고를 하여 늘 책임을 물으며 자신도 모르게 비난이나 충고를 하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죄책감이나 열등감, 불안과 공포까지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삶에 인과적 접근보다는 상호작용을 알아보는 자세로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트인 대화를 이끌며, ‘무엇’과 ‘무엇이’로 시작되는 문장을 써서 이해의 반응을 보이는 대화가 관계를 따스하게 이끈다(김선남 <자기 성장 집단상담 모형>에서).


신앙인으로 겪는 말 고민
흔히 크리스천들은 말만 잘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은 말만큼 삶이 따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진 정신과 전문의는 교회에서 성화된 삶, 즉 성경의 지향적 목표에 일찍 노출되어 그런 단어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하며, 성도의 실생활은 목표에 이른 것이 아니고 ‘과정’ 어딘가에 있기에 말과 갭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행위의 부족함은 숨겨지고 교회에서 배운 용어들로 말하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느껴지는 것. 또 성도들 간에 ‘지향적 목표’를 기준으로 판단하므로 냉소적으로 서로를 보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말과 삶의 거리 간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먼저는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부주의한 말을 절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실제 몸짓을 늘리는 일이다. 우리 마음속 강한 이기심, 이생의 욕심에 잡힌 마음을 내려놓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으면, 아름답게 느껴지는 언어를 늘어놓을수록 위선의 막은 두터워질 수밖에 없음이다.

좋은 말은 온전한 마음에서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는 야고보서 말씀처럼 좋은 말이 온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순리다. 그래서 좋은 말을 하려면 나타나는 표현뿐 아니라 그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맥스 루카도 목사는 이런 예를 들어 삶을 설명한다.
“삶은 뷔페식당에서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접시에 담을 수 있지 않다. 건강하고 좋은 분위기는 담고 빨래 더미나 실직 상황을 안 보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귀엽게 웃는 모습과 공부 잘하는 아이만 담고 사춘기와 교육비는 지나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므로 삶의 고민을 안고 지내야 하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몫. 그러니 운동할 때 숨차고 다리 아픈 것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고통에도 너무 집중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좀 떨어진 곳의 이야기, 세상 구석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시야를 넓히고 공감을 키워가라고 한다. 좋은 책을 보면 삶의 고통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님을 바로 느낄 수 있기에. (필립 얀시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를 추천한다).

아이들은 이런 모습의 부모를 보며 생을 관조하는 법도 배우고 어떻게 표현할지도 알게 된다. 곧 가정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어떤 말을 할까’를 가르치는 것으로, 듣고 말하는 훈련 이상 ‘언어를 이해’하며 ‘대화하는 자세’를 익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보다 말이 더 빠르게 나가지 않도록, 남의 말을 건성으로 듣지 않도록, 자기에 집중된 생각에서 나오도록 말이다.

좋은 말을 방해하는 것
C.S.루이스는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사탄이 우리를 끌어가려는 모습을 반어법으로 서술하며 우리 마음을 예리하게 짚는 사탄의 전략을 보여준다.
사탄이 작은 허점을 파고드는 데에 놀라다가, 최고의 복음주의 저술가인 C.S.루이스가 자신의 마음을 쓴 것이라고 고백한 말에 더 놀라게 된다. 그 가운데 ‘몸에 밴 말투’에 관한 대목에서는, 뭔가 거슬릴 때의 우리 표정과 말투가 특정한 순간에 만나면 마치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는 듯한 위력이 생긴다고 표현한다.
이때 극심한 증오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사탄의 공격 포인트가 된다고. 이 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사탄이 말하는 원수 쪽 사람들, 즉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쓴 것임을 생각할 때 신앙인인 우리의 ‘급하고 익숙한 말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런데 사탄이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천상의 소리와 같은 음악과 기쁨의 웃음소리라고 한다. 이 둘은 다 ‘맑은 소리’로서 속에 품고 살면 한결 보드라운 마음과 혀를 지니게 된다는 것.
또 산책을 통해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게 하며 그 평안함이 마음과 몸에 젖어 들게 한다고도 말한다. 반면 경박한 농담으로 인한 웃음, 허영심, 거짓 겸손, 사치스러움, 복잡한 생활은 예외.

미래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가 다스려야 할 탐욕과 야망, 두려움은 어디서 올까.
그것들은 다 ‘미래’를 향해 있어 그 눌림으로 현재에 정직하지 못하게 하고 친절한 말을 할 여유가 없게 한다. 따라서 오늘을 선물로 여겨 작은 친절 베풀기, 만나는 이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며 힘겨운 이를 위해 줄서기 양보도 하고 운전 중 끼어들 수 있게 비켜주는 자세로 사는 게 중요하다.
아는 이들 앞에서 겸손의 모양을 갖는 것 이상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매너, 나눌 수 있는 물질과 시간의 에너지가 얼마나 될지. 미래를 향한 엄숙한 열정에 비교해 볼 때 실제 생활이 너무 초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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