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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살린 말들
초대교회, 종교개혁, 한국교회까지 ‘말’을 따라서
[243호] 2020년 05월 01일 (금) 민대홍 @
   

복음, 초대교회의 말이 되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며 말(Logos)을 존재론적 개념으로 소환한다.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이시고, 그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는 요한의 선언은 1세기 팔레스타인의 신학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AD 90년경) 기독교인은 로마와 유대사회에서 철저히 비주류였다. 로마는 핍박했고, 유대교는 기독교인을 회당으로부터 축출했다. 기독교인들의 ‘말’은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가혹한 핍박과 고통의 부르짖음만 오고갔다.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삶을 빼앗긴 존재가 내는 소리는 말이 되지 못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말할 수 없는 세상, 아니 말을 빼앗긴 세상 속을 살았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말을 빼앗긴 당시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한복음 1장 14절)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선포한다(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말을 빼앗긴 사람들과 함께하신다는 메시지가 바로 ‘복음’이다. 이 믿음을 공유한 당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그러니까 예수의 복음을 듣고, 깨닫고, 보전하며, 확산시키는 주체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들의 모든 활동은 선교였으며, 로마의 모진 박해에도 끈질기게 말씀을 지켜냈다. 복음은 빼앗길 수 없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언어가 되었다.
복음은 당시 통용어였던 코이네헬라어로 필사되었고, 전파되었다. 회당도, 성전도 없는 초대교회는 말씀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는데, 말씀의 확대가 곧 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정치·사회·문화의 영역에서 교인들의 말은 힘없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예수의 말씀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운동력 있게 움직였고, 세상을 향한 교회의 강력한 언어가 되었다. 복음이 교회의 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빼앗긴 말을 되찾은 개혁
16세기 유럽에서 ‘말’은 소수를 위한 전유물이었다. 오직 라틴어로만 성경을 기록하고 읽어야 했고, 라틴어로만 설교해야 했다. 교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진행되는 예배에 묵묵히 참여하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또한 당시 교회는 성경을 번역하는 것을 엄금해 번역을 시도하는 사람을 화형 시키기 까지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권위를 가지고, 삶의 말은 소외당하던 시대.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개혁’이었다. 말씀의 권위를 훼손시키고 교회의 권위만 주장한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성도들에게 면죄부를 팔기까지 영적 착취, 삶의 착취를 자행하는 것을 개혁가들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구호로 내건 성경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토박이말’로 번역하는 일에 몰두한 것이다.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개혁의 리더가 된 루터. 그의 사역 중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한다면 단연코 ‘성경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이야말로 종교개혁을 이끈 가장 큰 힘이 되었으며, 독일 사회의 발전과 정신적 유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말로 소통할 수 없어서 신앙의 주체가 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이 교회에 있을 때 교회는 소수 기득권을 위한 종교로 전락하게 된다. 바로 루터가 몸담고 살았던 그때가 그랬다. 그때 성경말씀이 해방됨으로 성도들의 말이 회복된 것이다. 루터는 성경 번역에 착수한 지 불과 11주 만에 헬라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완역한다. 이 성경은 두 달 만에 5천 부 이상 팔리는 쾌거를 이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읽고, 말하고, 깨달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개혁은 루터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루터를 그 길로 가도록 이끄셨다.

우리의 말을 지킨 복음
한국 초대교회의 역사는 성경 번역 및 보급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땅에 교회가 생기기 전 서북지방 청년들은 만주지역에 있던 서양인 선교사과 연결, 복음을 수용하는데, 선교사와 서북청년들이 합심하여 번역한 성경이 ‘쪽 복음’으로 조선에 들어온다.
당시 조선사회는 유교적 체제와 지배질서가 강력하게 작동하던 사회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구분된 계급은 양반들에게는 살만한 나라, 다수의 백성들에게는 부조리의 나라였다. 이에 복음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평등하다’는 가치로 유교적 조선사회에 도전했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삶을 회복시키고 영적인 고양을 일으켰다.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성경을 통해 여성, 어린이, 노비, 백정 할 것 없이 복음을 읽었다. 성경을 전달하며 복음 전도자의 역할을 한 사람들을 매서(賣書) 또는 권서(勸書)로 불렀는데, 말 그대로 그들은 책(성경)을 건네준 역할을 했다. 이들은 성경을 받는 사람이 글을 모르면 가르쳐서라도 읽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하여 복음 전도가 일어나는 그곳은 바로 한글 교육소가 되었고, 먼저 깨우친 사람은 선생이 되었다.

성경을 전하고 이 땅에 복음이 확장되면서 ‘사경회’라는 기독교 문화운동이 일어났는데, 사경회는 다름 아닌 성경공부를 위한 모임이다. 성도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깨닫고, 삶에 적용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화했다. 이 경험은 한국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었다. 유교 체제와 지배 질서 속에서 소외당해온 여성, 어린이, 천민들이 말씀을 듣고 우리말을 글로 쓸 수 있는 문명인이 된데다, 신앙과 삶의 주체로 거듭난 것이다.

이 시기 우리 민족은 서구 열강의 침탈에 이어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우리의 말과 글까지 빼앗아 없애려 했다. 민족의 정신이 밑뿌리까지 흔들렸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민족을 일깨웠고, 우리의 말을 지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름도 일본식, 말도 일본말을 써야 하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이미 사회 저변으로 확대된 성경은 우리말을 보존한 소중한 도구가 된 것이다.

인격은 생물학적 요소가 아닌 정신적 요소로 구성된다. 정신은 말로 표현되고 글로 남는다. 그러니 ‘말의 격’이 ‘인격’이다.
초대교회로부터 기독교는 신앙의 언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말로 삼았다. 신앙이 인격으로 발현된 공동체가 로마 사회를 바꿨다. 훗날 말이 막혀버리니 공동체가 타락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개혁하셨고, 개혁자들은 토박이들의 말과 글로 성경을 번역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언문’으로 불리며 무시당하던 한글이 복음을 전하는 매개가 되었다. 복음은 우리 민족의 혼을 깨우고 무너진 삶을 회복시킨 놀라운 능력이었고, 일제에 의해 빼앗긴 말을 지키는 역할도 했다.
복음이 교회 공동체의 말이 되었고, 그 말은 살아서 능력을 발휘했다. 복음이 말을 살린 것처럼 교회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교회도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함으로써 복음의 담지자로 든든히 서야 할 것이다.

민대홍
본지 객원기자. 서로교회 담임목사로 파주 출판단지에서 문서사역과 목회를 하고 있으며, 숭실대학교에서 ‘한국기독교 역사관’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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