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을 생각하였습니다. 로마의 압박, 종교지도자들이 전하는 거짓 위로, 어디에도 희망을 찾지 못하던 그들이었습니다. 이집트 군대에 쫓겨 거세게 출렁이는 홍해에 도달했을 때처럼 그들은 메시아만이 살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들이 부풀어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린 사건이 주님의 오심이었습니다. 기다림이 오래 사무칠수록 기쁨은 더한 법이지요.
▶ 마리아와 안나와 시므온 그리고 목자들과 동방의 박사들…, 그들 가운데서도 목자들의 기다림은 더욱 절절했던 모양입니다. 누가복음은 천사들이 주님의 나심을 목자들에게 전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목자들을 찾아 간 천사들의 배후에는 물론 하나님의 뜻이 계실 테지요. 너의 기다림을 내가 보았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 창세기 46장을 기억하시는지요?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그를 찾아온 아버지와 형제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당부합니다. 바로가 “너희의 생업이 무엇이냐?” 물으면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집짐승을 길러 온 사람들입니다”라고 대답하라고 일러주지요. 정착민 아닌 목자들을 그렇게 꺼렸다는 뜻입니다. 목자들은 떠돌이였고, 정착민들에게 밀려 산악지대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그들은 안식일법도, 정결법도 지킬 수 없는 ‘자동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평화 저 편에 있던 또 다른 노예였던 것입니다.
▶ 그래서입니다. 그들의 기다림은 누구보다 간절하고 깊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찾은 천사들의 마음, 아니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들의 기다림은 왜 절망조차 할 수 없었을까, 생각하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의 기다림을 마음 한 자리에 담아 성탄의 뜻을 새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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