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마을과 숨쉬다 : 부천 약대동 마을공동체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이 있는 갈릴리와 같은 마을은 어디에 있을까. 이원돈 목사(부천새롬교회·신나는가족도서관 관장)가 찾아낸 마을은 부천 약대동이었다. 이 목사가 기독학생운동연합(kscf) 간사로 있던 시절, 사무실에서 우연히 지역 조사보고서를 보고 ‘이런 서민지역에서 목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뜻이 맞는 청년들과 약대동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떠밀리듯 내려와 정착해서 사는 곳. 34년 전인 1986년 6월 그곳에 부천새롬교회를 세웠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갈릴리인 이 약대동에서 우리의 잔치를 준비하고 우리의 피리를 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일대에서 하신 일은 믿음의 춤을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이 믿음의 춤으로 숙명론, 운명론이 사라지고 새로운 믿음이 전파되어 천국잔치가 벌어진 것이지요.”

아이들을 품다
그 믿음으로 교회를 세우고 보니 약대동은 주변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저소득 맞벌이 가정이 많았다. 그래서 낮이면 공장으로 일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온종일 혼자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에 가서 찬밥을 혼자 챙겨먹어야 했던 아이들.
그래서 1986년 4월에 새롬어린이집과 1990년에 부천 최초로 방과 후 어린이 공부방인 ‘새롬공부방’을 시작했다. 그때 이 목사의 아내로 함께 사역에 동참한 오세향 사모는 ‘나는 탁아소의 어린 아가를 등에 업고 연탄불을 갈면서 20여 명의 밥을 하는 씩씩한 탁아소 선생이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새롬어린이집과 공부방에서 더 이상 아이들은 외롭지 않았다. 선생님과 숙제며 공부도 하고, 형, 동생, 친구들과 노래도 배우고 견학도 가고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보냈다.
“시간이 지나 나라에서 공적으로 그 공부방들을 지역아동센터로 변경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새롬지역아동센터가 되었지요.”(새롬지역아동센터 김경희 원장)

가정을 품다
아이들을 품고 나니 그 다음에는 가정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 IMF가 터졌어요. 아이들은 우리가 돌보면 되었지만 갑자기 불어 닥친 경제적 공황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지요. 아동들의 문제를 아동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가족구조의 문제로 전체적인 시스템으로 보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부천새롬교회가 가정지원센터를 만든 이유였다. 미국 주정부마다 가족지원 시스템이 있는 것을 보고 어린이집, 약대글방, 새롬공부방 등의 활동을 묶어 가정지원 네트워크를 만들고 교육을 하기 시작했고, 이는 ‘약대동을 행복한 마을로 만들어야 겠다’는 목회비전과 연결이 되었다.
“목회를 하다 보니 약대동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지면 이사를 가더군요. 약대동을 떠나는 것이 이들의 삶의 목표인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을 살리지 않고서는, 이 마을을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약대동 마을 만들기
그래서 교회 선교 방향이 자연스레 마을 전체로 넓어지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가며 마을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약대동 마을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지역 내의 도서관 운동에 관심이 있는 복지관과 사설도서관, 공공도서관 실무자들이 함께 모여 작은 도서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주민자치센터 내에 작은 마을 도서관을 만들었지요. 그때 저희 교회가 운영하던 작은도서관(약대글방)이 2002년 ‘약대 신나는 가족 도서관’이란 이름으로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새롬교회의 마을 사역은 약대동주민자치센터와 연결되면서 노인을 위한 ‘은빛도시락 배달’과 어르신 한글교실, 외국인 한글교실까지 확대되었다. 도서관에서는 약대지역 가족문화를 건강하게 이끌기 위해 주부독서동아리인 ‘약대 신나는 아줌마클럽’을 만들었고, 1년 이상 상담학을 공부하고 독서치료를 공부한 이들은 전문적인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미술교육이나 체육교실 영어교실 등 다양한 품앗이 교육활동을 벌였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는 마을주민들이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마을 만들기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학습생태계를 꿈꾸며 마을과 지역, 교회 평생 학습 열망자들이 모여 탄생한 것이 지금도 하고 있는 수요 마을 아카데미이고요.”

마을 자존감이 올라갔다
이렇게 부천의 지역아동센터 60개와 작은도서관 15개가 연결되고 네트워킹이 되기 시작하자 이것은 그동안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한 작은 마을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 ‘뭐를 해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때 2012년 협동조합법이 만들어지자 약대동 ‘달나라 토끼 협동조합’ 탄생에 부천새롬교회도 힘을 보탰다. 2013년도는 약대동 마을에 중요한 해이다. 마을 한곳에서는 약대동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달나라 토끼 협동조합과 마을 카페를 만들었고, 다른 한곳에서는 사회적 기업 ‘아하 체험마을’이 생겼고, 또 새롬가정지원센터 중심으로는 ‘꼽사리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국제영화제들도 인근지역에서 마을영화제가 ‘꼽사리’ 껴서 열린다고 하는 것에 착안,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릴 때 ‘꼽사리 영화제’라는 마을영화제를 만든 것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영화제는 꼽이방송국, 꼽이심야식당, 꼽이청소년문화영화제 등으로 이어졌다. 마을의 마당이 생겼고, 마을의 자존감이 올라갔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부천새롬교회는 약대동이란 마을 속에, 약대동은 부천새롬교회의 마음속에 푹 담겨져 지금까지 온 것이었다. 교회의 일과 마을의 일을 분리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세월이 34년인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개교회만의 교회가 아니라 마을과 지역사회와 생명으로 연결된 마을 교회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물적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게 되어 교회간의 연합과 연대, 마을과 지역사회, 시민사회 환경 생태 등 생명 전체를 새로운 선교와 목회 대상으로 삼고 그곳에 허락하신 모든 자원을 하나님 나라의 자원으로 동원하는 생명목회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마을의 학습생태계, 복지생태계, 문화생태계, 평화생태계를 보다 치밀하게 만들어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이 목사.
“저희는 약대동에 녹색평화를 노래하려고 합니다. 도서관 재개관을 최근에 했는데, 축사에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녹색 지구를 만드는데 앞장선 16세의 스위스의 소녀 그레타 툰베리와 핀란드의 마린 여성 총리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청소년 북 코너를 만들어 우리 약대동 자녀들을 녹색평화를 꿈꾸는 자녀들로 키우며 우리 마을을 녹색평화의 푸른 생태마을로 전환시키는데 앞장서게 하고 싶다고요.”
더불어 최근 약대동 마을에는 신중년 세대가 도시농부가 되어 녹색평화를 가져오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어 문화를 선도하며, 노인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요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돌봄마을’의 꿈이 키워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원돈 목사(사진·위)와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았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골목길 사이사이 그 ‘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길이 살아있어야 마을이 삽니다”라고 하는 이 목사의 설명에 ‘아, 그렇구나. 골목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주민들을 지나치지 않고 품었기 때문에 이곳이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골목길 모양이 꼭 생명이 흐르는 혈관 같았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