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배려수업 / 약속과 배려 단순하게, 지속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모르냐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말하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자기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가족이 함께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약속과 배려’가 필요하다.

약속 ‘단순함과 지속성’
친한 친구 하나는 피아노 전공자로 집안에 방음이 잘 된 피아노실을 갖고 있다. 그 방은 피아노 연주만을 위한 시간 외에 조용히 시간을 보내거나 숙면을 취할 때도 사용하는데, 방음장치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방해를 받는다며 하소연 해왔다. 수시로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걸어오는 가족들 때문이라고 기도하거나 말씀을 읽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가족들.
그래서 그 방에서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지금 연습중이에요.’
문 앞에 적어 놓은 약속 한 문장만으로 달라질 수 있다. 우리 가정에도 몇 가지 약속이 있다. 글로 적어두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언제 야단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거짓말 할 때, 짜증낼 때…. 물론 실수로 잘못한 것은 야단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아이들의 마음과 태도의 방향을 눈여겨보는 편이다.

가정에서 약속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순함과 지속성’이 있으면 된다. 지켜야 할 약속이 수 십 가지가 넘으면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지켜야 할 약속을 오랫동안 지속해 나가면 머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게 된다.

배려 ‘공동체 인식’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도 혼이 난다.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해보는 일은 응원할 일이지만,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기에. 예수님은 떡을 떼시며 우리가 주님과 한 몸임을 말씀하셨다. 우리는 한 사람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공동체로 존재하기에 서로의 존재를 배려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너무 어린 탓에 가르칠 수도 없을 때가 있다. 식당에서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붙들어 두는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외식 자체를 최대한 절제했던 때가 있었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양육방식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절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다르게 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신자본주의 시대, 답을 알지 못하는 불안함과 앞서 달려가는 비교 대상들, 그리고 교육산업과 미디어의 정보들 앞에 부모는 조급함을 느끼게 된다. 공동체의 각 개체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긴 나머지 자신의 아이들에게만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아이를 목숨만큼 사랑하기에, 무엇인가를 해야 하기에, 결과를 빨리 도출해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양육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빨리 열매를 따먹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인지학습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3세 무렵에 인간의 뇌가 거의 완성된다”는 속설 때문에 서너 살, 아직 웃고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정작 누려야 할 아이만의 시간을 건너뛰고 있는 모습까지 접하게 된다.

그 결과, 똑똑하지만 아는 것에 비해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많지 않아 당혹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만난다. 갈등은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시작점인데, 갈등의 시간조차 아껴서 책상 앞에 시간을 쏟아 붓는 것이 최선이라 강요받는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정말 가르쳐야 할 내용은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살아가며 알게 될 내용, 즉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존재하고, 내가 소중한 것처럼 누군가가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들끼리 살아가기에 필요한 ‘약속과 배려’가 꼭 필요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 내용은 가르칠 내용이 아니라 부모가 그렇게 살아가면 자녀들은 자신들의 몸으로 기억할 내용들일 것이다.

이요셉
색약의 눈을 가진 다큐 사진작가로 진정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풍경을 글과 사진과 그림으로 표현하며, 여러 NGO단체에서 재능을 나누고 있다. 한국나눔봉사대상 금상,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기독교출판문화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결혼을 배우다>, <육아를 배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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