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배려수업 / 은혜공동체가 살아내는 ‘배려’의 삶

특별한 가족
여러 가족이 한데 모여 살며 혈연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공동체’란 이름으로 함께 살면서 아이들을 함께 기르고 어려울 때는 힘이 되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여름 SBS 스페셜 ‘간헐적 가족’이란 주제로 방영된 다큐에서 소개된 은혜공동체(대표 박민수 목사‧사진 아래). 14개 가족, 50명의 인원이 집 하나를 서울 도봉동 도봉산 아래 안골마을에 짓고 그렇게 살고 있다. 집 하나에 이 많은 사람들이 산다니,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동체 안에 대안학교가 있고, 방과 후 돌봄을 어른들이 함께 하니 ‘독박육아’란 말도 사라지고, 아이들이 절반인 공동체라 친구가 많으니 함께 놀고 공부하느라 엄마에게 심심하다고 징징대거나 스마트폰에 매달리는 아이들도 없다. 구역을 정해서 함께 청소하고, 공동식사를 해결하고 아이들도 당연히 자기 밥그릇을 설거지하니 ‘독박살림’도 없다.
퇴근하면 밴드실에서 악기를 연습하거나 춤을 추고, 운동도 하며,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옥상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음미할 수도 있다. 공동체 안에 동아리만 70개 나 될 정도이니 얼마나 다채로운 활동이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섞여서, 한부모 가정의 아이도 엄마와 아빠뿐 아니라 다양한 경력과 배경을 가진 어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다양하게 진로상담을 받는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어우러진 에너지 넘치는 가족이다. 서로 ‘배려’하지 않는다면 이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 텐데 이곳에서 ‘배려’의 비결을 배우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제자의 삶의 방식 ‘배려’
2000년, 교회로 시작된 은혜공동체. 10년 동안 성경공부를 하다 보니 할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성경에서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 ‘공동체’였다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면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박민수 목사는 “하지만 공부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은 다른 문제더군요. 서로 너무 잘 아니까 쉽지 않았어요. 예수님께서는 저희에게 이미 공동체 매뉴얼을 주셨는데, 처음에는 저조차도 마음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10년 동안 준비해보자고 했지요.”
목표가 정해지자 활동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동체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연합가족으로 살아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실패도 해보고,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는지 노하우를 터득하기 시작했다고. 2015년, 드디어 ‘이제 함께 살아도 괜찮겠다’는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017년 8월 공유주택 ‘은공 1호’를 준공해서 입주를 하였다.

“아이들이 뛰어놀아도 안전한 곳을 찾다보니 이 마을을 찾게 되었어요. 집을 마련할 때 넉넉한 사람들이 더 많이 냈어요. 돈이 없는 친구들은 월세 25만원만 내고 들어왔고요. 건축비를 줄이느라 저희가 직접 공사에 참여했고, 사유공간 보다는 도서관, 공부방, 카페, 어린이 도서관, 영화관, 작업실 등 공유공간에 더 많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구성원들도 미니멀 라이프를 주창하며 개인공간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예전에 갈등이슈가 되었던 설거지, 빨래 등을 정리하고 들어온 것도 이유이겠지만 공동체로 살기 위한 제자도의 핵심을 점차 체득하게 된 것.

“들어올 때 모두가 트렁크 2개에 옷가지 정도를 들고 들어왔어요. 그렇게 시작한 우리들, 제자도의 핵심은 ‘버림’과 ‘섬김’입니다.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 누가 더 많이 가질 것인가에 집중하는 대신 더 낮은 곳을 향하는 것이 ‘버림’이라면, 그 낮은 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바로 ‘섬김’임을 배웁니다. 그렇게 버리고 섬기는 삶이 배려의 삶이고, 그것이 제자도이므로 배려는 예절의 수준이 아니라 제자로서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하면서 좋은 나라, 좋은 가정, 좋은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자를 대접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배려입니다. 그것은 혼자의 삶 속에서는 배울 수 없고 관계 속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찾아가다 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공동체적 보편복지시스템
은혜공동체 안에는 또 특별한 것이 있다. 즐거운 일상의 삶뿐 아니라 힘든 일을 겪는 공동체 식구들을 위한 배려가 준비되어 있는 것.
“실직이나 건강, 대학 등 목돈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공동체 식구들을 위한 공동체적 보편복지시스템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토의와 숙의과정을 거쳐 무상의료와 반액등록금(영유아교육에서 대학까지)를 보장하고 재원은 기존 십일조에 소득의 10퍼센트를 더 내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금, 산후조리비, 자진 퇴사시 실업급여, 문화활동 지원도 7년째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창업지원도 하고 있는데, 공방이나 도시락가게, 최근 떡볶이 가게까지 여러 공동체원의 창업을 지원했다. 단순한 공유주택의 삶을 뛰어넘은 것이다.
동네에서도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은혜공동체와 함께 하겠다고 한다. “당신들 없으면 안 된다”고 하니.
“우리끼리 배려하며 섬기는 것뿐만 아니라 마을까지 생각합니다. 교회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관계망 형성’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채널로 지역사회 안에서 공동체 운동을 벌인다면 공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은 은혜공동체는 그래서인지 공동체 방문객을 팀을 짜서 응대하며 허용한다. 10월 방문객만 해도 500명이 넘었다고.
“실제로 저희 공동체를 방문하고 나서 공유주택과 공동체 사역을 시작한 분들이 계셔요. 함께 사는 것의 즐거움을 모두가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혈연관계, 사회적 지위, 성별, 직업 등에서 비롯되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진정한 친구로, 진정한 이웃으로, 진정한 가족으로 살아가셨고 그러한 삶을 천국의 삶이라고 말했어요.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공동체를 취재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설의 깔끔함이나 멋진 부분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지친 표정 없이 웃고 이야기하고 놀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래, 아이들은 저렇게 온 마을이 나서서 키우는 것이 맞는 것이지.
문을 나서는데 현관 벽에 이런 문구가 보인다. 공동체가 펴낸 책에 나오는 문구였다.

“여기가 내가 속한 곳이다. 이들은 내 사람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 나는 그들에게 속해 있다. 나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언지, 내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언지를 안다. 그들은 나의 관심사를 공유한다. 나는 이곳을 안다. 나는 이곳에 친숙하다. 이곳은 나의 집이다.” - <더 나은 삶을 향한 여행, 공동체> 중에서

주택협동조합 은혜공동체 : 02)966-5104
서울시 도봉구 도봉로 191가길 20 은공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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