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새로운 나날을 느끼고 싶다면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와 정보들로 우리는 ‘TMI(Too Much Information)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이 많은 정보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과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보만 좇다 보면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가운데 우리의 생각은 수동적이 되고 점점 얕아져 중심을 잡을 수 없게 된다. 통찰력과 창의성이 절실히 필요한 복잡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오히려 단순해져 가는 양상마저 나타남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

꼭 읽어야 하는 이유 하나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며 배우는 것을 좋아해 책을 잘 읽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력이 안 좋거나 집중이 안 되고 이해가 어렵다는 사람들, 읽고 나서 금방 다 잊어버려 책 읽는 일이 짐으로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모두를 위해 중요한 독서의 팁을 드린다면 그것은 책과 노트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읽어가며 중요한 부분이나 잘 모르는 것을 적는 것인데, 천천히 이런 자세를 익혀가는 것은 깨달음에 매우 도움이 된다. 책은 읽는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 담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내용을 정리해 요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에 철학자 존 로크는 ‘사색’을 덧붙여, 읽은 내용을 ‘오직 사색함’으로 자기 것을 만든다고 했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역시 ‘읽고 사색하는 일이 자신의 통찰력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뇌가 읽고 쓰고 기억할 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사색에 잠길 때는 다른 뇌파가 나오면서 마치 위대함을 향한 열정을 품을 때처럼, 또는 격정적인 사랑을 할 때처럼 독특하게 작동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통찰은 책을 읽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의 접점을 찾아 새로움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 정말 유익이 있나
책을 골라 읽는 것은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게 한다. 내가 선택한 책을 내 나름대로 읽으며, 내게 감명을 주는 대목을 찾아가는 일은 호기심을 계속 유지하게 한다. 또 이러한 과정은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게 하며 합리적인 답을 얻도록 이끌어간다.
문학 작품의 경우 여러 종류의 인생을 생각하게 해 융통성 있는 자세를 갖게 하고, 사람과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힘도 준다. ‘이야기 치료’에서 앨리스 모건은 ‘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문제를 극복하는 모습을 배울 뿐 아니라 오래된 죄책감이 피치 못할 상황 속에서 저질러진 일로 정리되어, 짐을 내려놓게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간접 경험함으로 위안이나 보상을 얻게 되는데 거기서 새로운 통찰을 얻거나 자아가 강화되는 경험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치유도 일어나는 책 읽기
‘문학치료’를 쓴 변학수 교수는 한 예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장면을 소개하며, 파티에 갔다가 쫓겨난 베르테르가 ‘호메로스’를 읽으며 평안을 얻는 광경을 설명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거절, 그러나 서늘한 그 감정을 기꺼이 참고 견딜 뿐 아니라 그 상황을 오히려 자기가 지배하는 모습으로 승화시킨 베르테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상상하고 연상하는 가운데 거절당한 경험에 감정이 이입되면 베르테르처럼 자신의 기억 속 아픔도 던져버릴 수 있다는 것.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에서 “살아가며 책에서 읽었던 유사한 사건이나 인물을 접하게 되면 놀라긴 하지만 곧바로 이미 경험한 것 같다는 생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삶 가운데 생기는 스트레스는 언제나 배출구를 찾기 때문에 이러한 문학작품을 대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정신 건강을 위해 환영받는 수단이 되어왔다.

IT 세상에도 인문학 독서가 필요할까
인공 지능이라 불리는 IT의 성능은 어떻게 매겨지나. 그것은 가치 있는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그래서 새롭고 창의적인 문제를 계속 제시하며 발굴해내어 데이터로 만들어 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공 지능의 그 개념을 잘 이해하면서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문제를 캐내는 사람, 바로 그렇게 인문사회 분야를 잘 아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학생들은 물론 어린이를 이러한 시대에 맞는 인재로 키워내려면 인문 고전을 읽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인문 고전은 적어도 1백 년 이상 1천 년 넘게도 살아남은 책이므로 그만큼 검증이 된 훌륭한 책들로서, 정독하며 필사하고 사색하며 깨달음을 가질 때 놀라운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단순히 얻는 지식을 넘어서 생각의 폭을 넓히는 지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줌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조선 후기 천재로 알려진 실학자 반계 유형원은 이렇게 표현했다.
“밝은 창가 조용한 책상 앞에서 책을 읽는다. 고요히 사색에 잠겨 성인의 말씀과 내 사색이 절묘하게 맞는 순간이 올 때 그것을 기록한다. 마음에 깨달음이 오고 손과 발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최고의 고전인 성경은?
꽤 많은 책을 읽으며 팔순이 넘은 권사님이 “이제는 성경만 읽기로 했어. 눈이 침침해 다른 책을 볼 여력이 없어. 평생 읽어 온 성경 말씀인데 이렇게 보석같이 마음에 박힐 수가 없다우” 하신다. 성경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면 나이를 막론하고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독하며 정리해 필사하다 보면 늘 새로운 깨달음이 오며 마음속에서 회개와 다짐이 일어나게 되니 어떻게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날마다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성경은 살아가는 동안 놓을 수 없는 책이다.

이 좋은 계절에
야수파 미술 전시회를 보고 나서 친구가 앙드레 드랭의 ‘테임즈 강가의 저녁노을’ 포스터를 집어 들었다. 영국서 살아본 적이 없는 친구가 런던 시내 여러 곳을 언급하며 한 말은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고 난 여운이 이 그림에 담긴 거 같아”였다. 런던 서점 주인과 주고받은 편지로 꾸민 책의 기억이 전시회 그림 속에서 연상된 그의 마음은 얼마나 멋스러운가. 한동안 바라보며 흐뭇해할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 문학치료를 하는 변 교수는 거부, 거절로 인한 적개심과 우울 치료에 다음과 같은 책들을 추천한다 :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J.M. 바스콘셀로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 가시고기(조창인),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미리암 프레슬러),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괴테).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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