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년, '바르게' 바라보기

가을을 닮은 중년
히브리인들은 ‘가을’을 ‘스타드’라고 불렀는데 여기에는 ‘씻어버리다’라는 의미가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가을은 단순히 곡물을 거두는 수확기만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탐욕으로 오염된 품성을 세척하듯 씻어버리는 ‘성찰의 시절’이다. 그런 점에서 중년은 가을을 참 많이 닮았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만 보이는 청년시절과 달리 중년은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까지 볼 수 있는 시력을 갖춘 시절이기에 자신의 인격 안에 붙어있는 ‘더러운 이끼’들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다.
그렇다. 중년은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한다’는 ‘원모심려(遠謀深慮)’가 가능한 귀중한 시절이며, 삶의 품격과 품위를 장착(裝着)한 ‘황금시기’이기도 하다.

중년, 흔들리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중년은 흔들리고 있다.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중년은 침상에 누워도 베개 대신 불안을 베고 자는 시절을 살기에 숙면(熟眠)보다는 불면(不眠)의 밤에 눌려 살게 된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고 진단한다. 불만과 불안으로 인해 심하게 흔들리는 중년의 위기를 생각할 때 마다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1859)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생각난다.
“(그때는)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세기였고 어리석음의 세기였다. 믿음의 시기였고 의심의 시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엔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엔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이 작품 속 첫 문장은 1775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과 혁명기의 프랑스 파리 두 도시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에 대한 묘사이다. 그럼에도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불만과 불안의 삶을 사는 중년의 흔들리는 표정이 스치듯 지나간다. 아마도 성공과 승리에 대한 강박이 주는 짓눌림과 그에 따른 정신적 탈진상태인 ‘번 아웃(Burn out)’을 매일 경험하며 사는 중년의 위태로운 실황(實況)과 너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중년의 삶이 ‘존재’가 아닌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각축장으로 전락한지는 이미 오래이다. 그래서 우울증과 의욕상실 같은 병리 현상이 유독 중년에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중년을 위협하는 세 가지 적(敵)

첫째, ‘지위와 직급에 대한 불안’
중세시대에는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으로서 한 개인의 가치를 결정했다. 그러나 신분제도가 철폐된 이 시대에는 사회적 지위와 직급이 그 신분을 대신하여 각 개인의 가치를 결정한다. 따라서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낮은 직급에 머무는 사람은 무능과 실패의 존재로 규정되며, 그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도 발생한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이 시대의 직급과 지위는 또 다른 ‘신분제도’가 아닐지. 사실 중년이 자신의 직급과 지위에 유독 집착하는 것은 경제적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곧 중년에게 부과된 자녀학업과 부모부양이라는 두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평균 이상의 물질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년의 ‘귀’는 연봉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고, 중년의 ‘얼굴 표정’은 통장잔고의 수치에 따라 감정편차가 심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다.

둘째,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꿈을 꿀 수 없다는 불안’
중년들에게 부과된 삶의 책무는 내 자신이 아닌 내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의를 표할만큼 아름다운 삶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사라진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자신의 중년을 ‘꿈을 삭제한 사막 같은 삶’으로 사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작가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1919) 속의 한 남자, 평탄한 삶을 살던 증권브로커 찰스 스트릭랜드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젊을 때 꿈이었던 화가가 되기 위해 타이티 섬으로 떠나던 시기가 40대 중년이었다. 중년은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는 자격이 유효한 시절’이다. 경계할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눈을 감고 꾸는 몽상(夢想)’이 아니라 철저하고 정교한 설계 아래 ‘눈을 크게 뜨고 꾸는 갈망(渴望)’이다.

셋째, 중년에 찾아오는 ‘건강 이상신호에 대한 불안’
청년 때는 주로 다쳐서 병원에 가지만, 중년 때는 대부분 ‘아파서’ 병원에 간다. 그만큼 몸을 ‘혹사’했다는 것이다. 중년 때는 도서관이나 극장보다는 ‘병원’을 더 찾게 되는 슬픈 시절이다.
신실한 사람 다윗도 40대를 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다. 사울왕의 집요한 살해시도를 극복하고 40세에 유다 왕으로 등극했으나, 아직 남아있던 사울왕의 측근들의 암살시도와 이방국가의 위협에 다윗의 중년은 늘 불안했다. 그래서 다윗의 시로 추정되는 시편을 보면 시인은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시편 102:24)라는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중년, 세 가지 계명

그렇다면 어떻게 중년을 살아가야 할까. 품위 있는 중년을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년수업에 필요한 세 가지 계명을 기억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제 1계명
꿈은 꾸되 욕망은 사절하라!

사실 인생은 ‘팔 홉’으로 사는 것이다. 즉 다 채워진 ‘열 홉’에서 ‘두 홉’쯤 모자라 아쉬움 속에 사는 삶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두 홉’마저 채우려고 질주하는 지나친 욕망은 삶을 위태롭게 한다.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은 그의 중년에 신실한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매입하려다가 거절당하자, 아내 이세벨과 공모하여 부당한 죄목을 씌워 나봇을 기소한 후 죽이고 그 포도원을 탈취한다(열왕기상 21:1~10). 일국의 최고 권력자로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아합이 나봇의 유일한 생존의 터인 포도밭까지 탐을 낸 것은 궁전 곁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싶었던 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거짓과 살인을 선택했을 때 그 꿈은 야망이며 욕망이 되어버린다. 결국 이 악행으로 아합은 길르앗 라못 전투의 상처로, 이세벨은 예후혁명 때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다. 중년은 꿈과 욕망의 적절한 ‘균형’을 학습해야 하는 시기이다.

제 2계명
이끌되 지배하려 하지 마라!

사실을 말하면, ‘반쯤 흐리고 반쯤 맑은 11월의 아침’ 같은 것이 중년의 삶이다. 따라서 자신은 언제나 잘되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아야 하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선민의식도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중년은 청년 때와 다르게 명예와 권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발동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풀이 ‘약초(藥草)’가 되기도 하고 ‘독초(毒草)’가 되기도 하는 것은 풀이 지닌 성분 때문이다. 따라서 명예와 권위를 갖기 전에 먼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이끌되 지배하려는 우(愚)를 범치 않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자 칼 융이 “사랑이 있는 곳에 지배가 없고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없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 3계명
모자람과 넘침, 그 모두를 경계하라!

말과 감정에 있어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적정량을 유지하는 것은 중년의 품위를 더욱 격상시켜주는 지렛대이다. 곧 절제된 말과 정제된 감정을 구사하는 중년은 우아한 멋을 발한다.
귓속의 전정기관은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달팽이관에 붙어있는 이석(耳石)이 그 중심에 있는데, 만약 이석이 달팽이관에서 분리되어 반고리관과 결탁하면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쓰러진다. 중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말과 생각이 지나치게 모자라거나 지나치면 그 삶은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그러기에 ‘알맞음’과 ‘적당함’을 학습한 중년만큼 매력 있는 신사는 없다.
4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위태로운 중년을 살던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위기의 40대’를 극복했다. 그리고 이후 자신과 같은 위태로운 40대에게 그 위기를 제압하는 권고를 들려주었다.

“그대의 실패한 과거는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고, 그대의 힘겨운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며, 그대의 불안한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라.”

아우구스티누스가 들려준 이 문구가 중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랜 벗이 되길 소망한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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